1-4. 시련이 시련을 만나면

바다에 안긴 딸

by 자미손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틀렸어?"

"아니, 자기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덤덤한 남자친구의 말에 으르렁 거리던 얼굴이 스르륵 풀렸다.


결혼이라는 걸 포기한 결혼 적령기.

모두 내가 맞다고 맞장구치며 치켜세우지도

모두 자기가 맞다고 반박하며 깎아내리지도 않는

수더분한 사람을 만났다.


나를 완전히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애나 하자는 마음으로 만난 사람.

연애만 할 생각으로 날 만난 그.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봐주는 그가 좋았다.

만난 지 200일 즈음 그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나의 제안에 난감해하던 그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아, 그랬구나. 이제야 알겠다.

나보다 고작 2살 많은 30대 남자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말하고

하늘과 꽃을 찬란하게 바라보던 이유를.


나는 14살 때 아빠를 잃은 후

애착 인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애썼다.

그는 30대 초반에 마주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의 시간들을

버티고 견뎌 끝내 일상을 되찾았다.


'나랑 평생 대화할 수 있고,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내 이상형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자기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평생 사랑하며 함께 하고 싶어.

손에 물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은 못해.

그래도 나랑 결혼해 줄래?"

아빠 산소에 함께 인사를 하러 간 햇살 좋은 날,

무릎을 꿇는 그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는 묘원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그의 손에 들린 반지처럼 우리의 눈가는 반짝였다.


소중한 인연의 힘을 믿는다.

나를 나로 봐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를 그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를 삼킨 바다를 비난하는 대신 그저 바다로 본다.

아빠를 잃고 자라지 못한 나를 탓하는 대신 그저 나로 본다.

그제야 자라기 시작한 나를 매일 다독인다.

오늘도 충분히 잘 해냈다고, 내일도 나만의 속도로 해보자고.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내 곁엔 내가 있다고.

계속 노력하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40대의 내가 나를 힘껏 안아준다.


서른넷, 결혼을 약속한 날.


(매주 목요일 밤 9시 연재)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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