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안긴 딸
"와이프가 물속에서 숨을 못 쉬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프리다이빙 기초 강습 첫날.
서울의 한 수영장 잠수풀에서
숨을 폐 안에 가득 머금는 호흡법을 익히고
귀가 아픈 것을 방지하는 이퀄라이징을 배운 후
5m 깊이까지 잠수를 시도했다.
"일단 제가 같이 잡고 내려갈 거예요.
그냥 숨 참고 이퀄라이징만 하시면 돼요."
남편이 강사님께 미리 부탁한 덕분에
첫 잠수를 빠르고 편안하게 성공했다.
"참 쉽죠?"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계속 나를 지배했던
불안과 걱정이 날아갔다.
숨이 모자라면 줄을 잡고 빠르게 올라오면 된다.
나에게는 생명줄이 있다.
여기는 바다가 아니다.
나는 침몰하는 배 안에 있지 않다.
나는 괜찮다.
고요한 물속에서 긴 오리발을 끼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듯한 그들.
아빠도 이제는 편안하실까?
혼자 어두운 바닷속에서 춥지는 않으실까?
아빠를 땅에 묻은 지 오래인데 왜 아직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두려움과 편안함.
미안함과 즐거움.
부정과 긍정을 오가는 복잡한 마음이 이내 잠잠해진다.
조용한 물속에서 호흡을 멈추고
쉼 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배움의 시간이 소중하다.
생각이 많은 나를
오롯이 그 순간에 머물게 하는 존재.
물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평화'라는 선물을 안겼다.
2018년에 제주로 이주한 우리는
여름이면 퇴근 후 곧장 바다로 향했다.
오리발을 끼고 스노클링을 한 후
바다에 누워 하늘을 덮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착각이 든다.
유유자적.
과거에 대한 후회와 한탄.
현재에 대한 욕망과 욕심.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
아기 요람에 누운 듯 작게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자연스럽게 온몸의 힘이 빠진다.
"아, 난 자유다."
제주에서 매일 바다를 마주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바다를 만나면 피어오르던 죄책감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빠는 눈도 감지 못한 채 마흔여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나는 맛있게 먹고, 웃고 떠들며,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과연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가족을 위해 그렇게 고생했던 그가 세상에 남긴 나.
하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나.
그는 떠나고 없는데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차라리 나 대신 그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향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나의 10대, 20대, 30대.
아픈 흔적들이 옅어진 자리에 기어이 행복이 피어난다.
아빠를 삼킨 바다에 마음 편히 안기는 날이 온다.
아빠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삶을
이제라도 내가 나에게 주고 싶다.
늦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보다 젊다.
그저 나답게 오늘을 살아내자.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자.
(매주 목요일 밤 9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