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NNER SPARK 14화

검사출신 변호사가 속아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다.

by INNER SPARK

3년 전이다. 그때는 변호사 10명도 안 되는 작은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업무를 보좌하는 김과장이 나한테 사적으로 드릴 얘기가 있다면서 면담을 요청했다.

김과장은 우리 법무법인에 오기 전에는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 업종에 근무했다가 많은 것을 잃고 이직한 케이스였다.

김과장 캐릭터는 아주 적극적인 스타일로 일을 맡겨놓으면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남의 눈치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나도 김과장을 좋게 보고 있어서, 당시 다른 법무법인은 시도하지 않았던 법무법인 브랜딩과 마케팅을 총괄시키고 있었다. 김과장은 그런 쪽에 이미 공부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김과장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그냥 업무 애로 사항 정도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대표님, 제가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말끝을 흐린다.


나는 나쁜 일인가 싶어 애타는 마음에 말을 재촉했다.


“김과장, 무슨 일인데, 그냥 본론을 빨리 얘기해 줘.”


“대표님, 제가 예전부터 스타트업을 구상해 놓은 게 있는데, 혹시 그것을 함께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엥? 스타트업? 김과장, 무슨 소리야. 지금 법무법인 마케팅 개편 하느라 바쁘잖아.”

나는 제대로 내용을 들어보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하고, 법무법인 업무에 전념하라고 핀잔을 줬다. 김과장도 별말 없이 다시 법무법인 업무에 열중했다.

법무법인 브랜딩과 마케팅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설 때쯤, 김과장이 또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이번에도 나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나 들어보고 거절하자 싶어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대표님, 제가 수년 동안 자동차 동호회 활동 열심히 해왔는데, 그곳 인터넷 카페에서 법무법인 마케팅 활동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꿈은 프리미엄 자동차를 이용한 소셜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앱을 만들고 그곳에 사람들을 유입시켜 네트워크를 일으키고 매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귀가 얇은 내가 들어보니, 좀 혹하는 구석이 있기는 했으나, 여전히 법무법인의 변화와 성장이 우선이었기에 타이르듯 거절했다.

“김과장,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내가 그런 사업을 해본 것도 아니고, 수익이 어떻게 창출될지에 대한 확신이 안서네. 그리고 앱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이고, 사람들을 어떻게 그곳에 모이게 할지..... 안 해본 거라. 그냥 법무법인 일에 매진하자고.”

김과장은 이번에도 거절당하자, 지난번에 다르게 많이 실망한 듯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방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났을까. 김과장이 뭔가 출력물을 들고 다시 내 방에 들어와 웃으면서 잠시 30분 정도 시간을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그것임을 직감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앉으라고 했다.

김과장이 절치부심했나 보다. 한마디로 사업계획서를 아주 구체적으로 만들어왔다. 홈페이지는 어떻게 구축하고, 앱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상세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1년이면 모든 앱이 개발되고, 앱만 개발되면, 자동차와 연계되어 사람들이 앱에 들어와 매출을 일으켜줄 것이라고 했다.

“김과장, 1년이면 되는 거야?”

“예, 대표님, 1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김과장의 의지와 신념이 확고하고, 계획도 아주 구체적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당시 여러 사건에 의해 내 인생에 무언가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김과장의 사업이 그 변화를 일으킬 그것으로 느껴졌다.


김과장과의 30분간의 대화에서 정말 근사한 그림과 동영상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졌다. 시각화가 이루어졌다.

“알았어. 그럼 일단 법인부터 만들고, 앱을 만들 개발회사와 디자인 회사를 알아보자고.”


김과장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시늉을 하면서,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만들어내겠습니다. 개발회사와 디자인 회사는 이미 알아봐 놨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다. 지금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수익은 김과장이 약속한 대로 크게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계속해서 시드자금을 마련해서 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뭔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상황이 계속됐다.

스타트업 회사를 시작하고 나서 1년이 지난 후에 겨우 앱이 개발됐는데, 안드로이드폰 시스템에서는 앱이 통과가 되었는데, 아이폰시스템에서는 몇 달 동안 앱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정말 속이 탔다.

몇 번이 거부되었음에도 김실장은 포기할 기색이 없다. 미국에 있는 아이폰시스템 관계자와 수십 차례 소통을 통해 넉달 만에 통과시켰다.

앱이 잘 작동되는 걸 보고 나는 이제 김과장에게,


“김과장, 이제 매출 나는 건 시간문제겠네. 석 달 정도면 매출이 나겠지?”

김과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대표님, 마케팅을 해야 사람들이 우리 앱으로 몰려들죠. 이제부터는 마케팅에 집중하게 지원사격 부탁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뭔가 사기꾼에게 말려든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1년이면 큰 매출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저런 말을 뻔뻔하게 하다니.

그렇게 나는 법무법인과 스타트업 회사를 동시에 운영하게 됐다.

힘든 게 두 배는 아니라도 한배 반은 됐다. 김과장은 묵묵히 저녁시간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스타트업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매진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처음에 구상했던 대로 큰 매출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으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어 보인다.


작은 규모지만 투자도 받았고, 각종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여 회원들도 제법 모였다.


마케팅을 열심히 하자 큰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들과 친해지고, 광고 동영상을 만들면서 알게 된 신인배우들이 모여지면서, 이제는 엔터테인먼드회사를 겸하고 있다.


세상일이 그렇게 내가 원했던 목표와는 좀 다르게 현실화되지만,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우리가 상상한 모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생생하게 시각화하고 그것에 신념을 부여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면 상상한 것이 현실세계에 실제로 나타나게 된다.


다만, 그것이 현실화되는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적정한’ 시간이 되면 나타나게 된다.

나는 적정한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란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시각화에 강한 신념을 부여하게 되면, 현실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김과장을 재촉하지 않는다. 도토리를 심어놓고 그것에 물과 거름을 주면 자연이 알아서 땅 위로 큰 참나무를 만들어준다.


도토리를 심어 놓고 그것을 자꾸 들추어 그것이 제대로 자라는지 확인하는 행위는 성공의 씨앗에 ‘의심’이라는 농약을 주는 것과 같다.

나는 김과장을 동업자로 생각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있어서는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 본다. 아, 지금은 김부사장이다. 나는 그가 알아서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임을 믿는다.

세상에는 기회가 널려있고, 그것들이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데 그것을 잡는 사람들은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성공을 단언하기는 이르다. 다만 ‘행운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온다’라는 말을 믿는 나는 김과장이 그 행운이고 기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스타트업을 겸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법조인 동료라도 비웃을 수 있고, 괜히 걱정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할 우려가 있다. 부모님과 형제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상상한 모습이 완전히 현실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그 모습을 완전히 갖추었을 때 알리고 싶다. 그리고 그 성공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나는 이것을 세상에 대한 약속이라고 여기고 싶다. 사업을 성공시켜 내 마음속에서 비밀리에 세상과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싶다.


아직까지는 가능태 영역에 에너지 또는 홀로그램으로 머물고 있긴 하지만, 시각화한 것들이 곧 현실화되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헌신하고 전념할 예정이다.


도대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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