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까마득한 시험대 앞에 설 때가 종종 있다. 40대가 되고 지나보니 내게 제일 치열하고 힘들었던 때는 30대의 모든 순간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에 뛰어들었던 20대, 알만큼 알고, 사람들도 만날만큼 만나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온 30대, 그리고 그 요란한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끼는 40대.
물론, 40대가 되어서도 늘 안정적이진 않다. 어느 순간이나 클라이언트들의 시험대에 올라야 하고 내 능력치를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치열했던 30대를 잘 견디며 지나오니 웬만한 부정 이슈들은 냉정한 머리와 가슴으로 독대할 수 있는 정도의 강심장이 됐다.
어느 날인가 친한 동료가 힘들고 지치는 하루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침마다 자신에게 긍정 확언을 하며 다짐해도 무너지는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사람에게 상처 받은 뒤, 이 정도로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실망한다고. 억지로 버티는 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했던 그 친구에게 나는 버티지 말라고 했다.
사람은 가끔 도망칠 때도 알아야 한다.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이기적인 마음도 가질 줄 알아야 하며, 배려 따위는 개나 줘야 하는 순간들도 종종 찾아온다. 가장 이기적일 때 가장 이타적일 수 있다. 배려는 해줬을 때 ‘기브 앤 테이크’가 되는 사람에게만 하면 된다.
자신이 나약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면 힘이 든다고 말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면 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늘 행복하고 좋기만 하면 AI지 사람이 아니다. 힘든 일이 오면 좋은 일이 또 오기 마련이다. 행복한 일이 왔을 때는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힘든 일이 오면 가끔 내려놓고 쉼을 택하면 된다. 그게 건강한 삶이다.
그리고 나는 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면 된다. 매일 매순간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겠나. 다만 누구든 겪는 일이고, 나에게도 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견디면 된다. 그러면서 삶을 헤쳐 나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아가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내게 친절한 사람에게만 진심을 다해 친절하면 된다. 그렇게 했는대도 때로는 믿었던 친구들이 배신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간다. 그러면 나도 그들을 놓으면 된다. 뭐든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
내가 만인을 사랑할 수 없듯, 만인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참 힘든 터널을 지나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내게 내 친구가 그랬다.
“니가 보살이냐?”
맞다. 나는 부처도 아니고 주님도 아니다. 포기해야 할 때는 포기도 해보고 내 마음을 다독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도 온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하다가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면 그것이 결국 마음의 병으로 오게 되니까 나를 꼭 돌보자.
“내일은 내일의 개새끼가 또 무슨 사고로 나를 빡치게 할까? 그게 뭐든 상관없다. 나는 또 잘 해결하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