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는 작은 선물을, 큰 새는 큰 선물을.
[책정보] 제목 : 새의 선물, 저자 : 은희경, 장르 : 장편소설, 출판사 : 문학동네
[글정보] 제목 : [격파, 벽돌책] 4. 새의 선물, 글쓴이 : oh오마주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첫 장 :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전문
10쪽 :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11쪽 : 나의 분방한 남성편력은 물론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중략-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12쪽 : 나는 === 순간에도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다. 관능적 교태와 서정적 수줍음을 적당히 연출함으로써 상대방과의 일치된 행복감을 꾀했을 뿐 스스로가 완전히 몰입해 본 적이 없다.
13쪽 : 남자를 위해 허락된 내 사랑은 작위일지언정 위선은 아니다.
작위 : 금지된 일을 의식적으로 함.
위선 : 겉으로 착한 체함.
18쪽 :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나를 귀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저당 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귀여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비굴함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20쪽 : "그냥 실성해 죽은 것도 아니고 쟤 에미는 목을 맸잖아요. 쟤 삼촌이 제 누이 시신을 거둬다가 화장했다면서요. 저게 커서 뭐가 될지 알고... 아무튼 나 같으면 손녀 아니라 뭐라도 께름칙해서 못 키워요."
나에게도 귀와 눈이 있다는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할머니가 들어오실까 봐 바깥 기척에만 신경을 쓰며 내 앞에서는 드러내놓고 그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중략-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게 된 것은.
21쪽 : (위선이나 가식이 아닌 작위이므로)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25쪽 : 그 (이모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모를 '시스터'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중략- 중학생들과 죽이 맞아 끼득거리고 있는 이모와 학생들의 모습은 희망원의 자매들처럼 천진하기만 했다.
이모의 과외지도는 따라서 오래갈 수 없었다.
31쪽 : 하긴 어린애들의 편지 심부름이란 하나의 유행 같은 것이었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상대일지라도 자신이 젊은 베르테르나 된 것처럼 동생 혹은 조카를 시켜 편지를 전하게 하는 것이 청춘 남녀가 상상해 낼 수 있는 낭만의 일종이었다. 이모가 편지 심부름을 원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1. 차례 이름을 보면서
차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지루하고 엉뚱한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꼬집어 보는 것처럼 읽었다. 고무줄처럼 아무리 당겨도 자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마주했다.
2. '나는'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이 주는 효과
프롤로그에서 현재의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반복되는 '나'라는 단어를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보통, 문장을 해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나는'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에서 반복된 충격을 받았다. 18쪽에서 또다시 '나는'이 등장한다. 그 순간 충격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린 진희와 다 큰 진희의 말투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였는데 어른이었고, 어른이었는데 어린아이였다. 18쪽 한 문단에 한참 머물며 속으로 깔깔 웃었다.
3. 친척들의 멱살을 잡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 성격이 '팔공산과 금오산을 품었다'라는 사실을 꺼냈다. 산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라고, 산다는 의미는 '강한 기운'이다. 영국 여행 갔을 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억양뿐 아니라 성격도 거칠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보다 터프한 편이었다. 동산들이었지만 산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공기조차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아이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친척들의 멱살을 세게 잡았다. 욕도 나올 뻔했다. (20쪽) 어른이란 작자들이 아이보다 성숙하지 못했다.
4. 진희 이모님 덕분에 손발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태껏 외국 벽돌 소설을 보다가 한국소설을 보니, 동해바다에 온 기분이 들었다. '역시 현지 농수산품을 먹어야 하는 건가.' 읽는 내내 시원하고 심장이 쫄깃하다. 마흔에 가까운 내가 본 진희네 21살 이모님은 소녀와 숙녀의 과도기였다. 이 소설이 나왔던 1995년, 평범한 20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야기 속 20대는 더욱 예전이니, 어떻게 봤을까. 과하게 상큼 발랄한 이모님 덕분에 손발이 '만화체'로 바뀌었다. 책을 읽는 즐거운 아침을 선물해 주신 이모님께 현세에 가장 큰 칭찬, '좋아요 와 구독'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