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호스텔 4인실에는 두 개의 이층 침대가 있었다. 벽에 붙어 있던 침대는 비어 있었고, 창문 옆쪽 침대는 두 사람이 점유하고 있었다. 위층에 누워 있던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아래층에 누워 있던 여자는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돌렸다. 검고 긴 머리와 짙는 눈썹, 깊은 눈매를 갖고 있던 그들은 정반대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위층 여자가 발랄한 강아지에 가까웠다면, 무심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는 아래층 여자는 나른한 고양이에 가까웠다.
여행 중에 만난 외국인들은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짓거나 또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사교성이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종의 예의 같은 것이었다. 배운 건 최대한 써먹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소리로 인사를 했다. 큰 소리로 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라도 나를 사교적인 사람으로 착각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역시나 위층 여자였다.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똑같은 인사를 되돌려준 여자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무관심한 태도를 고수하던 아래층 여자가 별안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너 한국인이야?”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가볍게 몸을 일으키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일리프고, 얘는 샤프란이야.”
그들은 터키계 독일인이었다. 방학을 하자마자 이스탄불로 날아온 그들은 이주 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잠깐 아르바이트 하러 왔어. 휴가철에 일하면 수입이 짭짤하거든.” 이민 2세대인 그들은 터키어와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영어도 꽤 잘했기 때문에 관광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큰 레스토랑이 있거든. 우린 거기서 일해. 늦은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그 식당에 독일인들이 많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샤프란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거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많아. 유명한 관광지랑 해변에 가면 여기저기서 독일어가 들린다니깐.” 풍성한 머리를 매만지던 일리프가 덧붙였다. “여름엔 어딜 가든 독일인들을 볼 수 있어. 네가 추측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 많다고 생각하면 돼.”
그들의 말 속에선 ‘독일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독일인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있었다. 의도적인 행동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에 더 가까워 보였던 탓에 나는 농담하듯 가볍게 말했다. 너희들도 독일에서 왔잖아. 그들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떨떠름한 반응에 놀란 건 내 쪽이었다. 독일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이라면 독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샤프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우린 독일에 거주하고 있어. 독일 여권도 가지고 있고. 하지만 우린 터키인이야.”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인종을 물어본 게 아닌데. 그러나 이내 그것이 인종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만약 터키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여기서 살 거야? 내 말을 듣자마자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여긴 너무 보수적이야.”
처음엔 그들이 두 나라의 정서를 골고루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이민 2세라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들은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해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터키인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터키에선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이스탄불이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오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생경한 정서였다. 이방인이 되면 다른 이방인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방인’이란 단어 속에 다양한 부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이층침대의 아래층은 쾌적함이나 편안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미토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4인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묵었던 방은 가장 비싼 축에 속했다. 인원이 적은 방을 고집한 이유는 최대한 덜 불편하게 지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로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 방은 늘 소란스러웠다. 일하러 온 사람과 놀러온 사람의 패턴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네 명의 투숙객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끊임없이 들락날락 거렸다. 하루 종일 소음이 들렸고 한밤중에도 불이 켜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일주일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사람을 홀리는 이스탄불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만난 장기여행자에게 이런 충고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뭔가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떠나는 게 힘들어진다는 뜻이었다. 누가 잡는 것도 아닌데 훌쩍 떠날 수가 없었다. 몇몇 장소들만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다던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빈둥거리는 동안 몇 명의 여행자가 들어왔고, 어슬렁거리는 동안 몇 명의 여행자가 떠났다. 하릴없이 배회하다 숙소로 돌아온 어느 날,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층침대의 위층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니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조금 피곤한 상태였지만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겐 가끔 대화 상대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시간을 조금 쓰기로 했다.
그녀의 이름은 캐시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애리조나에서 왔다고 했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들, 즉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중남미,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들은 모두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달랐다. 전부까진 아니어도 대다수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말했다. 미국이 큰 나라인 것은 사실이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국의 행정구역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나라 이름을 놔두고 굳이 주 이름을 말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유를 물어보는 대신 그녀가 살고 있는 나라 이름을 대신 알려주기로 했다.
아하, 너 미국인이구나! 내 말을 듣자마자 캐시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미국인이야. 진짜 미국인!” 미국인이면 미국인이지, 진짜 미국인은 뭐람. 아무래도 농담하는 것 같아서 농담하듯 대꾸했다. 너는 진짜처럼 생겼어. 갑자기 캐시가 웃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원주민의 피가 흐른다는 뜻이었어. 조부모님이 아메리카 원주민이었거든.”
캐시는 자신의 조부모와 내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특히 눈매가 매우 닮았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의 짙은 밤색 눈동자와 깊지 않은 아이홀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혈통을 함께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원주민의 핏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를 보며 반색했던 이유가 단지 대화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주민이라는 개념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온 내가 원래 살던 사람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정서에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이 낯설지 않았던 건, 핏줄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정서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였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이스탄불에는 동서양의 문화와 정서가 공존하고 있었다. 서로 달라서 충돌했고, 서로 달라서 아름다웠으며, 서로 달라서 어우러졌다.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도 그랬다. 흔히 타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을 이방인이라 부르지만, 모국에 살고 있어도 이방인이 될 수 있었다. 어디에나 속해 있으면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해 있지 않은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조부모와 비슷하게 생긴 여행자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캐시를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서양인의 이미지가 편협하고 한정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버스 타는 곳까지 구태여 배웅 나온 캐시는 미국식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