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의 국경마을은 여행자보다 호객 행위를 하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이들은 어쩌다 나타나는 여행자를 자신의 미니버스에 태우기 위해 아득바득 따라붙었다. 사기 당할 위험이 높은 미니버스는 타고 싶지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른 교통수단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사꾼과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더 지체했다간 국경에 발이 묶여버릴 수도 있었다.
“시엠립 갈 거면 얼른 타세요. 지금 출발할 거니까.” 억지로 올라탄 미니버스엔 두 명의 태국인과 세 명의 서양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콕 주재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의 직원들이었다. 소속을 알고 나자 약간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유엔 직원들을 태운 버스라면 적어도 이상한 곳으로 가진 않겠지.
여섯 명의 외국인을 태운 버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그들 중 한명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시엠립으로 간다고 했더니 그들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도시라는 설명을 덧붙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우린 바탐방으로 가는 중인데.”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발끝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였는데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갈 즈음,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우리 먼저 데려다 준 다음에 시엠립으로 가는 모양이네.” 다들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캄보디아의 지리에 무지했던 우리는 시엠립으로 가는 길목에 바탐방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다른 도시를 경유하는 것은 흔한 일이어서 그의 말은 타당하게 들렸다.
버스가 멈춘 건 그로부터 삼십 여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출발한 이후로 입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기사는 공터에 덩그러니 서 있는 건물 앞에 버스를 세웠다. 시동을 켜놓은 채로 뒤를 돌아본 기사는 나와 시선을 맞추며 뻔뻔하게 말했다. “이 버스는 시엠립으로 가지 않으니까 넌 여기서 다음 버스 기다려.”
처음엔 머릿속이 하얘졌고, 다음엔 분노가 끓어올랐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난폭하게 쿵쾅거렸다. 당신이 말했잖아! 시엠립으로 가는 버스라고! 격한 반응에 놀란 기사는 흥분한 나를 살살 달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가 올 거야.” 그는 공터에 서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된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명함을 건네주며 속삭였다. “저 기사,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사기꾼이 이상하지 않다고?), “그래, 널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무서워졌다), “방콕에 돌아오면 꼭 연락해.”(나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것인가?)
버티고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참한 심정으로 배낭을 짊어졌다. 일인분의 무게를 덜어낸 버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흙먼지만 폴폴 날리는 도로를 응시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사무실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젊은 여자와 그녀의 세 아이들이 있었다. 쑥스러워 하면서도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서 나를 관찰했다. 생글생글 웃는 동그란 얼굴들을 보니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 뭉툭해졌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 때 픽업트럭이 도착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뒤에는 성인 두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고, 그 뒤쪽에는 덮개가 없는 작은 짐칸이 있었다. 도로보다는 폐차장과 더 어울릴 것 같은 차에서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내렸다. “관광객이 너무 적어서 버스 운행이 중단됐어.” 어이없는 상황에 실소가 터진 나에게 그는 트럭 뒷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엠립까진 500바트야.”
돈을 또 내야 한다는 말에 겨우 가라앉혀 놓은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큰소리를 내는 것도 싫어하고 싸우는 건 더 싫어해서 웬만한 일들은 그냥 넘어가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면 여행자들을, 특히 나처럼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을 호구로 생각할 게 뻔했다. 그래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따지기 시작했다. 국경에서 출발할 때 시엠립까지 가는 버스비를 다 냈다고! 그는 결국 선글라스를 벗었다. 뺀질거리는 인상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박해 보였다. 잠시 고심하는 척 하던 그는 300바트만 내라고 했다. 이미 요금을 지불했는데 왜 또 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쉬울 게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싫으면 타지 말던가.”
그랬다. 나는 이 게임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돈을 지불하는 쪽이 갑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돈을 받는 쪽이 을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동수단이 없는 상황에선 그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빈 좌석을 채우지 못한 트럭 기사보다 더 아쉬운 쪽은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마지못해 300바트를 내고 트럭 뒷좌석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곳엔 커다란 배낭을 끌어안고 있는 두 명의 여행자가 앉아 있었다.
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사기를 당한 그들은 커플이었다. 여자는 일본인이었고 남자는 홍콩 토박이였다. 일본에 살던 여자가 홍콩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남자는 앙코르로 가는 길이 이렇게 먼 줄 몰랐다며 웃었고, 여자는 앙코르로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웃었다. 버스만 제대로 탔더라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던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만 했다.
탈탈거리던 트럭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비틀거리며 달렸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가 위로 툭 올라갔다가 아래로 쿵 떨어지는 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됐다.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으나 불규칙한 진동이 수면을 방해했다. 멍한 상태로 버티는 동안 땅거미가 내려왔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누구도 웃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차 안에선 작은 한숨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오늘 중으로 시엠립에 도착할 수 있어요? 기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글쎄.”
휘청거리던 트럭이 다시 멈춰다. 줄줄이 늘어선 수십 대의 차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길의 폭도 좁고 차들도 엉켜 있어서 옆으로 피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우리를 내버려 둔 채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는 다시 트럭으로 돌아왔다. “아까 내린 비 때문에 저 앞쪽 길이 전부다 진흙탕으로 변했대. 그래서 큰 트럭들이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래.”
앞에서 달리던 트럭의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버린 게 문제였다. 그 트럭이 길을 막아버리자 뒤따르던 트럭들이 줄줄이 멈춰 섰고, 그 뒤를 따르던 나머지 차들도 같은 처지가 된 것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트럭운전사를 비롯한 여러 명의 운전사들이 차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거였다. 난감해하는 우리에게 기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중으로 시엠립에 가는 건 불가능해.”
태국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캄보디아로 넘어온 이후로는 매 순간이 난관이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교통비를 썼는데도 언제 도착할지 기약조차 없었다. 그냥 비행기를 탔어야 했는데. 자책감에 휩싸인 채로 길 위를 서성대다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거나,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거나, 체념한 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허공을 응시하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는지 가늠해보다가 어느 부류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에서 밤을 새우느니 뭐라도 해보는 게 낫겠어. 결심을 하고나자 풀려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맨 앞에 바퀴가 빠진 트럭이 있다고 했으니 일단 그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막혀 있는 곳을 벗어나면 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길을 동행한 여행자들에게 작별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계획을 말해주면 놀랄 줄 알았건만, 그들은 나보다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타날 거야. 그곳에서 차를 얻어 타거나 자전거를 빌릴 생각이야. 그런 방법도 없다면 그냥 걸어가야지 뭐.” 만약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엠립까지의 거리를 알았다면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 개념이 전혀 없었던 여행자들은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나머지 여행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남아서 기다리는 쪽과 우리와 함께 걷는 쪽으로.
도로는 진흙 범벅이었다. 발이 쑥쑥 빠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뒤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질퍽질퍽한 진흙 아래로 발이 푹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릎까지 잠겨버렸다. 늪에 빠진 사람마냥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더니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건져 주었다. 간신히 빠져나온 뒤에야 진흙에 잠겨 있는 둥근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길을 막고 있는 트럭의 바퀴였다.
제일 앞에 빠져 있는 트럭을 지나쳐 한참을 더 걸어가고 나서야 단단한 땅이 나타났다. 발과 다리에 묻은 진흙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고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 진흙길 앞에서 포기자가 속출했던 탓에 걷는 사람들의 수는 확 줄어 있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배낭을 메고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길을 달빛에만 의지하며 걷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약간의 물을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얘기를 조잘거리며 별것도 아닌 일에 킥킥거렸다.
무거워진 다리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즈음, 멀리서 다가오는 두 개의 불빛이 보였다. 트럭의 전조등이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외국인들과 마주친 트럭기사는 일인당 200바트씩 내면 시엠립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으나 불평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미친 짓을 가장 먼저 시작한 우리 셋과 끝까지 따라온 몇 명의 여행자들은 짐칸에 올라탔다. 좁은 길에서 요령 있게 트럭을 휙 돌린 기사는 시엠립을 향해 질주했다.
트럭의 짐칸은 말 그대로 짐만 실어야 하는 곳이었다. 심한 진동으로 인해 엉덩이의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손이 저리도록 난간을 붙잡고 있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상쾌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과 아늑한 달빛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밤의 아리아가 몽롱하게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기사는 시엠립에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돌아다닐 힘도 없었던 우리는 그곳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자다 깬 모습으로 나타난 주인은 빠른 속도로 방을 배정해 주었다.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간 자리는 노곤함으로 금세 채워졌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였다. 계획이 틀어지거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고 여행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정을 즐기는 법을 모르는 자에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중요했다. 게다가 난 스물다섯이었다. 기다림에 익숙한 나이도, 느린 것을 참을 수 있는 나이도,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나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 직감했던 이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 때문이었다. 지독하게 힘들긴 했지만 모든 순간이 나빴던 건 아니라는. 심지어 재미있는 순간들도 제법 있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