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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정 Oct 11. 2023

가깝지만 아주 먼

한적한 길가엔 몇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었다. 개중 깔끔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더니 서글서글해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늘 그랬듯 ‘코리아’라고 대답했다. “아하, 코리아!”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코리안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이진 않아서 이곳을 방문했던 한국인들이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바로 그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평양에서 왔지? 딱 보니까 알겠다!”


싸늘하게 굳어버린 나에게 그는 라오스와 북한의 관계가 가까웠는데 지금은 예전만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고 했다. 북한에서 온 사람을 만나서 너무 기쁘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호의적인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에 담긴 진지함의 농도가 너무 진했다. 불현듯 라오스가 사회주의국가이고 정식명칭이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대로 두면 더 민망해질 것 같아서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남한에서 왔어!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한의 수도가 어디지?” 나는 큰 소리로 ‘서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 세울!”이라고 했다. ‘평양’은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서울’은 세울이라고 발음하다니. 그 순간 깨달았다. 코리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남한이 아닌 북한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서울은 몰라도 평양은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국경을 넘어보기 전에는 ‘남한(South Korea)’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 단어는 오직 문자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발화될 가능성이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나에게 ‘코리아(Korea)’는 오직 대한민국만을 의미했다. 세상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한민족이라고는 하나, 북한과 남한은 너무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이동이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북한에서 온 여행자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한에서 온 여행자를 만날 확률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을 만나면 남한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건만, 내가 조우한 현실은 달랐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코리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물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었는데 진심으로 궁금해 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상대의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질문의 내용은 질문하는 사람의 관심사를 드러내는 법이었다. 내가 들어본 질문 중에는 북한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통일을 원하느냐, 북한의 도발이 두렵지 않느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등등.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리라는 짐작은 했으나 우리나라의 존재감은 수상할 정도로 희미했다. 반면 북한의 존재감은 의아할 정도로 선명했다. 남한에 관심을 보이는 여행자는 드물게 마주쳤지만, 북한에 관심을 보이는 여행자는 흔하게 마주쳤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한국은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거기에 북한이 포함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그 요소가 그토록 크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북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난 곳은 베이징에 있는 북한식당이었다. (한국에서 우연히 탈북자를 만났을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이상 그 사실을 알 길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인 첫 만남은 베이징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나는 M과 함께 베이징을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이십대 중반이었던 우리에게 북한은 위험천만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지구 반대편의 소수민족 마을보다 비무장지대 건너편에 있는 북한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심리적 거리는 지리적 거리를 압도했다. 


북한 식당에 대한 인상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식당은 은밀한 회동이 이루어지는 밀실로 둔갑했다. 단지 밥을 먹으러 갔을 뿐인데도 누군가와 접선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당당한 척 했지만 심장이 요란스레 요동쳤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설마 국정원에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식당은 밝고 넓고 깨끗했다.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입장한 것이 머쓱해질 정도였다.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자 익숙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차례로 올라왔다. 아는 음식도 있었고 모르는 음식도 있었는데, 양쪽 모두 보기와는 달리 뭔가 심심했다. 좋게 말하면 건강한 맛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밍밍한 맛이랄까.


넓지도 않은 땅덩이에서 이토록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있을 때 공연이 시작됐다.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매체를 통해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간극은 엄청났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무관한 공간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아닌,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진짜 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그들은 식당을 떠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멀리서 볼 땐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가까이서 보니 동질감이 느껴졌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생김새가 비슷한 편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에게선 그런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던 이유도 옛날 분위기를 풍기는 한복과 살짝 부풀린 머리와 진한 화장 탓이었을 뿐, 생김새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면 나는 분명 그들을 북한 식당에 밥 먹으러 온 한국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들 위로 겹쳐지는 순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깨달음의 순간에는 어떤 감정이 동반되곤 하는데, 이 순간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먹먹해졌다. 똑같다는 인상을 받는 게 당연하거늘, 왜 이토록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걸까. 


어렸을 때부터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많이 불렀지만, 정작 북한을 의식하며 살았던 적은 없었다. 나에게 북한은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만 잠깐 생각나는 곳이었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남의 나라에서는 보였다. 가까이 있을 땐 비현실이었는데 멀어지고 나니 현실이 되었다. 다르다고 믿었던 것이 실제로는 다르지 않았고, 당연하다고 확신했던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워지면서 마음속에서 뭔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알던 세계에 생긴 또 하나의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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