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말했다. 버스터미널로 가자고. 그러나 릭샤가 멈춘 곳은 여행사 앞이었다. 여기는 버스터미널이 아니라고 했더니 기사는 여기서도 버스표를 살 수 있다고 우겼다. 뻔뻔한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그가 애초부터 터미널로 갈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를 굳이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여행사로부터 커미션을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불쾌한 감정이 목덜미부터 등줄기를 따라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큰 소리로 항변하거나 돈을 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폭염의 한복판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릭샤에서 내리자 기사는 여행사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선풍기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따라 들어갔다. 두어 개의 책상과 낡은 소파가 전부인 사무실에는 중년 여자가 앉아 있었다. 수수한 사리를 입고 몇 개의 금붙이를 걸치고 있던 그녀는 무심한 시선을 나에게 던졌다.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었지만 인상은 푸근했다. 사기꾼처럼 보이진 않아서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델리까지 가는 버스표는 얼마죠?
그녀가 제시한 금액은 300루피였다.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자 제일 좋은 버스라서 그렇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터미널에서 사면 반값 정도 밖에 안 될 텐데. 심드렁해진 나에게 그녀는 더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 터미널에 가봤자 괜찮은 버스는 다 매진됐을 거야. 창문도 제대로 안 열리는 이등석은 남아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등석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날씨에 그런 버스를 타고 가다간 통째로 구워질 게 뻔했다. “날도 더운데 에어컨 나오는 버스 타고 델리까지 편하게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에어컨이라는 단어에 사고회로가 정지된 이유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더위 탓이었다.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이 간절했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버스를 예약했다. 지갑에서 300루피를 꺼내자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릭샤비는 물론 커미션까지 챙기게 되었으니 좋아하는 게 당연했지만, 지나치게 의기양양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그러나 300루피와 맞바꾼 예약증은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상태였다. 떨떠름한 맛이 입안으로 퍼져나갔으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목적지와 출발시간이 적힌 예약증을 반으로 접어 지갑에 잘 넣어두는 것 외에는.
다음 날 오후, 조금 일찍 여행사로 갔다. 마땅히 있어야 할 버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불길한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 수수한 사리를 입고 몇 개의 금붙이를 걸친 여자에게 물었다. 예약한 버스가 여기서 출발하는 거 맞아요? 여자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델리행 버스는 지금 오는 중이야.”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여행사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했다. 버스가 도착했구나 싶어서 그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길에 서 있는 것은 낡은 승용차뿐이었다. “이 차를 타고 정류장까지 가야 해.” 낯선 사람의 차에 덜컥 올라타는 것은 한국에서도 위험한 일이거늘, 하물며 인도에서 여행사 로고조차 붙어 있지 않는 차를 혼자 타고 간다는 건 목숨을 내놓겠다는 뜻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깊은 주머니 안에는 한국에서 구입한 접이식칼이 웅크리고 있었다.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매끈한 칼집을 만지작거리며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위험한 상황을 상상하고 있는데 짐을 한가득 짊어진 사람들이 불쑥 다가왔다. 아빠와 엄마, 어린 남매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남자와 몇 마디 주고받은 그들은 승용차 문을 열더니 안으로 쑥 들어갔다. 남자는 나에게도 얼른 타라고 했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나를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한껏 펼쳐놓았던 상상의 나래를 머쓱하게 거두어들이며 비좁은 승용차에 몸을 구겨 넣었다. 네 명이 탈 수 있는 차에 여섯 명이 앉아 있는데다가 짐까지 많아서 내부는 터질 지경이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동을 걸었다.
털털거리며 달리던 승용차가 정차한 곳은 쭉 뻗은 도로의 가장자리였다. 휑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정류장 표시는커녕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다. 황량한 길 위에서 배낭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고 있는데 아스라한 굉음이 들려왔다.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창밖으로 휘날리는 검정색 커튼을 확인하자마자 내가 탈 버스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300루피짜리 에어컨 버스가 창문을 열어놓고 질주할 리가 없지.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꼬깃꼬깃한 지폐였다. “에어컨 버스는 취소됐어. 100루피 환불해줄 테니까 저거 타고 가.”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에어컨 버스가 취소된 것보다 고물 같은 버스를 200루피나 주고 타야 한다는 것이 더 억울했다. 분노를 분출하기도 전에 버스가 도착했다. 이걸 탔다간 델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쪄죽을 게 분명했다. 이 버스 안 탈 거니까 당장 환불해줘! 딴청을 부리던 남자는 나를 버스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어서 그런지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등바등하다가 떠밀려 들어온 내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버스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닫아버렸다.
인도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였다. 빨려 들어갈 듯 매혹적인 눈동자도 있었고 호기심이 담긴 천진난만한 눈동자도 있었지만, 무례하리만치 집요한 눈동자가 대다수였다.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애를 쓰면서 내부를 훑어보았다. 모든 창문마다 검정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선풍기는 한 대도 없었다.
화살처럼 날아오는 시선을 외면하며 딱 하나 남아 있던 빈자리로 다가갔다. 배낭을 선반 위에 억지로 쑤셔 넣은 다음, 원래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도 힘든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창가 쪽에는 선량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겠지만, 불신이 가득한 상태에선 뭐든 삐딱하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릭샤 기사를 의심하지 않았던 건 노인이기 때문이었고, 여행사 직원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옆자리 할머니도 어쩌면 그들과 한통속인지도 몰랐다. 첫인상에 속아 함부로 긴장을 늦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든 사이에 여권과 돈을 다 털린 수많은 여행자들 가운데 내가 포함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온몸의 세포들을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로 전환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서슬 퍼런 칼날을 품고 있는 매끈한 칼집이 만져졌다. 스물두 살에 첫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그 중 절반 정도는 혼자 다녔다. 당시만 해도 혼자 여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겁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난 무서운 것도 많고 경계심도 많고 의심도 많은 인간이었다. 소심하고 낯가림도 심한데다가 예민하기까지 했다. 인도는 타고난 성향과 가장 맞지 않는 나라였다. 접이식칼을 구입하면서까지 여행을 밀어붙인 까닭은 이십대에 가지 않으면 평생 가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칼을 꽉 움켜쥔 채로 눈만 굴리고 있는데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있었다. 열기와 체취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의자를 젖히고 잠을 자기까지 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앉아 있는데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곁눈질로 바라보자 할머니는 겸연쩍게 웃었다. 냉랭한 표정으로 불쾌함을 표시한 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참다 참다 다시 힐끗 쳐다보자 할머니는 다시 겸연쩍게 웃었다. 왜 계속 쳐다보는 거지?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다가 할머니가 허리를 어정쩡하게 굽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저런 자세로 앉아 있는 걸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잠시 후, 몸을 기울이고 있던 할머니가 허리를 똑바로 세우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바로 그때, 한 움큼의 햇빛이 내 왼쪽 얼굴과 어깨 위로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한쪽 눈을 질끈 감다가 퍼뜩 무언가가 떠올랐다.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더니 할머니와 눈이 또 마주쳤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은 할머니에게 막혀 더 이상 내 얼굴에 닿지 않았다. 곧추 세워져 있던 등이 앞으로 살짝 구부러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할머니가 등을 대고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빛을 내가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몸으로 햇빛을 가려주던 할머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커튼을 가리켰다. 다 가려지지 않는다는 말인 것 같았다. 단단했던 마음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과분한 호의가 당황스러웠고, 칼을 움켜쥐고 있던 손이 부끄러워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는 불편한 자세를 고수한 채로 계속 웃기만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차라리 내가 창가에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짓으로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던 할머니는 내가 창밖을 보고 싶다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바꿔 창가에 앉으니 고여 있던 열기가 확 들러붙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흙먼지 섞인 열풍이 밀고 들어왔다. 이래서 창문을 꼭 닫아놓은 거였구나. 창문을 가린 커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가운데 부분을 손으로 붙잡았다. 햇빛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은 할머니는 몇 분 만에 잠이 들었다. 주름진 옆얼굴을 보니 괜히 뭉클해졌다.
처음 버스를 봤을 땐 사기 당했다고 믿었다. 할머니와 자리를 바꾼 후로는 오해한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델리로 가는 도중에 사기를 당한 게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원한 건 델리로 곧장 가는 직행버스였는데, 내가 탄 건 마투라와 브린다반을 들렀다 델리로 가는 관광버스였다. 힌두 성지로 꼽히는 두 도시를 방문하고 나서야 관광버스에 남아 있는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를 억지로 끼워 넣었음을 깨달았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던 데다가 그 사이 몇몇 승객들과 조금 친해진 탓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내렸다. 휴게소인줄 알고 따라 나섰던 나는 얼떨결에 여러 사원을 전전했다. 그때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몇몇 승객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경계심 때문에 눈도 마주치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나눈 몇 마디 대화는 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커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이들은 모두 여름휴가를 온 가족단위 여행자들이었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재미있기까지 했던 이들은 내가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양 옆에서 호위(?)해 주었고, 궁금해 하는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고, 집에서 싸온 과일과 간식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한 여자애는 자신과 인도를 꼭 기억해 달라며 자신이 끼고 있던 은반지를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이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기사가 틀어준 발리우드 영화 음악을 다 함께 따라 부르는 진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한글로 적힌 자신의 이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동자도 보지 못했을 것이며, 현지인이 말해주는 인도에 대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생일이 마하트마 간디와 똑같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나를 더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나였다. 델리의 짙은 어둠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열린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한들한들 춤을 추는 수십 개의 손들이 너무 고와서 가슴이 찡해졌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마침내 인도를 제대로 여행할 준비가 되었음을 확신하면서.
이듬해 봄, 다시 인도로 떠났다. 첫 번째 여행 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칼도 챙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낮에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밤에는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잤다. 암리차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에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잤는데, 다음날 떠날 때 깜빡 잊고 챙기지 않았다. 실제로 쓰게 될 일이 없기를 바라며 구입한 칼은 그렇게 인도에 남겨지게 되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완전히 새것과 같은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