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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Feb 05. 2024

맞다! 나 며느리였지?

아버님 맛있게 잡수세용~

"나만 주말에 집에 갔다 올게~"

아버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입맛도 식욕도 없으셨다. 그러다 그나마 어머님 생신날 오리진흙구이와 단호박 영양밥을 사갔었다. 자식들 부담될까 뭐 하나 맛있다 먹고 싶다. 이런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영양밥이 맛있으셨다며 어떻게 사 먹을 수 있을지를 물으셨다. 그 말에 아드님이 오랜만에 효자모드를 장착하고 다녀오겠다는 거다. "그래 그러셨어? 다행이네... 정말 맛있으셨나 보다." "그래 나 뭐 맛있다고 하신 말씀 처음 들어봤어~" "그러게 나도 처음 듣네..." "그래 네가 예전에 뱅어포 해준 거 얘기 하긴 하셨었다. 그거 말고는 진짜 처음이야!" "그으으~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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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노릇 하나 해본 적이 없는 며느리는 깊은 고민에 잠겨본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 마트에 갈 시간조차 없어 급하게 쿠팡으로 배송을 시켰다. "뱅어포 해줄게~" "응? 그~~럴래?.... 아니 너 귀찮은데 하지 마" 신랑 목소리 속에 사실 내심 좋았던 모양인데 눈치를 보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그래 샀어~" "뱅어포 되게 비싸네~" "원래 뱅어포 비싸!" "여태 갖다가만 먹었지 사봤어야지..." 그리고 굳이 신랑이 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뱅어포 요리를 시작한다. 꼭 그러려고 한건 아니지만 이왕 하는 거 우리 아빠 꺼도 아니고 생색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당뇨가 있으신 아버님, 설탕대신 조청으로 해야겠다. 숟가락이 안 들어간다. "오빠아~!" "이것 좀 해줘~" 사실 약한 모습보이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혼자였음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했을 것이다. "이거, 조청 좀 퍼줘~ 설탕 안 넣고 조청 넣으려고... 당뇨이시잖아!" "가서 말씀드려 특별히 설탕 안 넣고 조청 넣었다고..." 솔직히 좀 구차한 거 같다. 근데 없는 얘기는 아니고 내 맘을 어필하고 싶었나 보다. 숟가락이 구부러지게 조청을 수북이 퍼서 돌돌 말아 올린다. "다른 숟가락으로 해~" 또다시 숟가락이 휘어질 것 같지만 내 눈치를 보며 아버지 생각에 꾹 눌러 조청을 퍼 돌돌 말아낸다. 그러길 세 국자, 조청도 바닥을 보이고 고추장도 빠악 빡 긁어 양념을 만든다.   

고추장 별로 안 먹는 다 했는데 이번 설에 다시 가져와야겠네... 매운걸 덜 먹는 탓에 이 고추장으로 올해 날 줄 알았는데 겨울방학에 쌈장 만들고, 뱅어포양념을 만드니 고추장도 바닥을 드러냈다. "나 자도 되지?" 피곤한 맘, 이제 다시는 부르지 말아 달라는 부탁조의 말을 하고 고이 들어간다. 간장, 마늘, 후추, 깨소금  듬뿍듬뿍 넣어 조청을 꾹꾹 눌러 섞어 준다. '제발 맛있어라! 맛있어져라!' 마법을 부리며 주문을 걸어본다. 양념소스 완성!

그릇째 들고 방으로 쫓아간다. "맛봐봐~" "짠가? 단가? 괜찮아???" "빨리 먹어봐~" 피곤해서 누웠다가도 마지못해 일어난다. "양치했는데... 맛을 모르겠어~" "그래도 먹어봐~ 맛없으면 어떻게" "진짜 양치해서 맛이 안나~" "체리야 맛봐봐" 체리아빠는 체리한테 임무를 넘긴다. "괜찮은 거 같은데" 체리의 오케이 사인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우유갑 펴놓은 것을 까는 잔머리를 굴리며, 뱅어포를 두 장씩 쌓으며 양념을 구석구석 골고루 발라본다. '에잇! 뱅어포 상태가 진짜 별로다.' 갈기갈기 다 찢어져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구매후기 남겨버리겠어~ 뱅어포조각 퍼즐을 연신 맞춰가며 양념을 치덕치덕 사알살 발라본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빠도 뱅어포를 좋아하신다. 이거 해 드리고 한판 더 할까? 그러기엔 고추장이 없는데 순간 또 고민이 몰려온다. 일단 해보자! 그리고 식탁으로 옮겨 불판까지 피고 기름을 넣고 골고루 비벼본다. '이제 시작이다. 잘해보자고~~~'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이때는 양념이 덜 묻게 엇갈려 두장씩 양념이 안 묻은데로 구워준다. 그래야 그나마 덜 타고 골고루 잘 익을 테니.... '요리는 과학이고, 타이밍이다.' 오늘도 양팔로 집게를 잡고 휙휙 과감하게 뒤집어야 한다. 찢어지고 날팍날팍해진 나쁜 뱅어포들이 많아 아주 많이 속상하다. 나중에 잘라서 넣었을 때 쪼가리가 많이 생겨 뽀대가 안 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암튼 침착하게 하자. 불은 약하게 하고, 기름 바르고, 잘 펼치고 조~ 심스레 뒤집기를 10번만 하면 된다. 한번, 두 번, 세 번, 점점 차분하게 잘한다. 부실한 뱅어포를 탓할 시간조차 없다.

하얗게 불태웠다. 어~~~~ 휴! 드디어 끝!!!

그냥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말고 그냥 대자로 누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실체들, 눈을 한번 질끈감고, 예쁘게 각을 맞추어 썰어 통에 담는다.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담다 보니 양이 된다. 그~렇~다~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조금 적지만 한통 잽싸게 담아버린다. 이건 바로바로 '우리 아빠 꺼~~~~ 매정한 딸이 되지 않아도 되겠어!' 갑자기 힘이 샘솟는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이젠 후딱 치워버리자!' 지체할 틈 없이 설거지를 하고 스버너까지 닦고 정리해 버린다.

힘들었는데 예쁘게 담긴 뱅어포를 보니 너무 뿌듯하다! 그것도 시아버님 우리 친정아빠 반찬을 만들다니 너무 행복할 수가 없다. 빨리 재껴두고 싶은데 자뻑에 빠져 서랍을 뒤져 나름 예쁘게 포장을 해본다. 그리고 다음날 체리아빠는 손수 만든 뱅어포와 사골, 체리와 만든 당근케이크를 들고 길을 떠났다.


아버님이 귀여우시게 어머님께 "뱅어포 이거 나 혼자 다 먹으면 안 돼?" 하셨다는 거다. 에~고 그렇게 좋아하시면 2통 다 드릴걸 살짝궁 죄송하기도 하면서 너무 뿌듯했다.

'부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건강,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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