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에 모아둔 돈도 없이 대출만 안고 살았다. 프랜차이즈 경력 9년, 성취감도 없고, 전문성도 없었다. 이력서를 내고 싶었던 곳엔 낼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하고, 저 멀리 외딴 공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든 콘텐츠가 내 인생을 바꿨는데, 공장을 나와 기회가 생겨 지금은 예전엔 감히 지원조차 못 했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곳에서 스스로 역량을 키워 더 큰 꿈을 이루겠다는 열망을 품고 입사했다.
하지만 사람은 간사하게도 적응의 동물이었다. 감사한 일도 잠시, 익숙해지면서 똑같은 삶이 될 것 같았다. 또다시 성취감 없고, 출근은 하기 싫고, 퇴근 시간만 바라고,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기도 싫었다. 가장 오래 있는 시간이 회사인데 그런 생각으로 회사에 앉아있다면 내 인생이 너무 안타깝지 않나, 싶었다.
그때, 성취감을 넘치게 느끼는 인생을 만들기로 했다.
평택에서 강남까지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매일 4시간씩 출퇴근을 했는데, 아예 고시원을 잡았다. 그리고 하루 12시간 이상씩 회사에 남아있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였다. 회사에서 내가 만든 콘텐츠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때면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는데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임을 깨달았다. 그 느낌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회사 일도, 퇴근 후의 시간도 이제는 버티는 게 아니라 뭐든 해보는 시간으로 채웠다.
나는 늘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나중에”라는 말로 포장했다. 시간 없고, 돈 없고, 여유 없다는 말이 내가 나를 미루는 가장 익숙한 핑계였다.
피아노도 그 중 하나였는데,
‘피아노 레슨비 모으면 1년에 얼만데.’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라는 생각으로 좋아하는 것을 외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미루고 회피하는데도 마음속에 계속 살아 있는 단어와 감정들이 꿈틀거렸다. 피아노를 보면 손끝이 저린다거나, 파티를 기획하는 드라마를 보면 어깨를 들썩인다거나, 나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거나.
그래서 그냥 덜컥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하루 한 시간, 작은 건반 소리에도 가슴이 울렸다. 너무 좋았다. 그렇게 큰 성취감을 느낄 줄은 몰랐다.
때 마침, 성인반 연주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마음속에 맴돌던 파티 기획자의 모습이 떠올랐고, 조심스럽게 원장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그 연주회 제가 기획해 봐도 될까요?”
그렇게 또 하나의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다. 퇴근 후, 주말마다 테이블 세팅, 팜플렛 디자인, 디저트 준비, 분위기 하나까지 직접 기획했다. 공간은 작았지만, 그날의 난 열망하던 드라마 속 호텔 파티 기획자처럼 살았다.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삶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살아야 한다는 걸. 이 경험들을 시작으로 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기로 결심했다.
꾸역꾸역 버티는 회사 생활이 아니라, 내가 직접 기획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삶이 되도록 하자고. 가슴이 울리는 것을 ‘못할 일’이라며 외면하지 않고, 시간을 내고, 두려움 속에서도 실행하는 것.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이 기회가 되고, 기회가 또 새로운 세계의 문이 되어 나를 그 앞으로 이끌기로.
그게 내가 택한 ‘좋아하는 삶’이다.
70대의 내가 이 글을 읽으며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때 그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정말 멋진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