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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Dec 31. 2023

가장 아늑한 품에서 느끼는 환희

#아늑함 #평안함 #진심의 소통 #휴식과 충전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이과수 폭포, 존재만으로도 경이로운 그곳에서 가브리엘이 오보에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다. 이윽고 원주민들이 하나둘 나타나 화살을 겨누며 그를 에워싸기 시작한다. 언제 줄리안 신부처럼 될지 모르는 절체 절명의 순간이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원주민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점점 원주민들이 경계의 눈빛을 풀고 차분히 앉아서 그의 오보에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가득 찬 원주민들의 표정이 곱고 아름답다. 그러다가 나이가 있어 보이는 한 사람이 나타나 가브리엘로부터 오보에를 빼앗아 부러뜨려 던져 버리고는 사라진다. 못마땅함의 표현으로는 너무도 완곡한 제스처였다. 그에게 겨누던 창과 활시위를 그대로 당겨버렸을 수도 있었다. 어른이 사라진 후 한 청년이 물속에서 두 동강 난 오보에를 주워 가브리엘에게 건넨다. 미안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 청년이 건넨 것은 오보에 만이 아니었다. 원주민 청년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브리엘은 그 손을 잡고 부족들을 따라간다.  '손을 건네고, 그 손을 잡고, 함께 간다.' 지극하게 평범한 행위가 이토록 뜨겁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원주민 청년이 건넨 손은 그저 그가 넘어질까 봐 잡아 준 손이 아니다. 가브리엘에 대한 경계를 모두 풀고 낯선 이방인을 자신들의 생존의 공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청년의 손을 잡은 가브리엘은 어떤 두려움도 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진심 하나뿐이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직립 보행으로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는 점과 함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정말 큰 축복이다. 다른 존재에게 나의 감정과 의견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 너무도 필요한 일이고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토록 훌륭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곱고 아름다운 말로 감사와 희망을 전하기보다는 거칠고 험한 말로 원망하고 욕하고 비난한다. 영화 <미션>에 나온 3분간의 장면을 보며 화술, 설득, 소통,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수많은 책, 강의, 전략들이 무색해진다. 진심과 진심이 닿는 데는 복잡할 이유가 없다. 그대로 전하면 된다. 나의 이기심과 이득을 채우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움직이려고 이렇게 많은 전략들이 필요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생존을 위해 잘 쓰라고 부여받은 언어라는 수단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인간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렇게 남용하고 악용하는 것은 아닌가도 반성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d0I3Za-4KSc

영화 <미션>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에게 가브리엘이 메시지를 전한 방법은 음악이었다. 신의 메시지도 그들에게 닿았다. 나는 특정한 종교는 없다. 그러나 절대자의 존재는 믿는다. 이 복잡한 지구와 우주가 아무런 계획과 시스템 없이 운영된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회사와 가족의 운영도 때로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절대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 확신을 주고자 신이 지상에 보내준 이가 엔리오 모리꼬네가 아니었을까. 가브리엘과 원주민이 대치한 상황에서 울려 퍼지는 오보에, 세상의 그 어떤 음악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오보에 선율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때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쾌락과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감의 만족, 관능적인 짜릿함, 마음으로 느끼는 벅찬 감동, 모두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극적인 것을 느끼는 데는 나 또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자극도 없는, 너무도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 그 안식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럴 때면 잠시라도 절대자의 품에 기대어 쉬고 싶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첼로로 들으면 몸과 마음에 그 깊은 음색이 스며들면서 편안하고 안락함에서 오는 환희를 느낀다. 절대자와 내가 가까워지는 지점의 어딘가를 느낀다. 요요마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 또한 모리꼬네를 보내주신 그분과 같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감정의 쓰나미가 수차례 휩쓸고 간 연말이었다. 서로 진심이 닿지 않는 소통으로 오해와 상처가 오갔다. 부처님의 무릎을 베고, 하느님의 어깨에 기대어 쉬고 싶은데 바쁜 그분들이 내게 올 수 없으니 대신 지구에 특사로 보내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마음으로 모든 빗장을 풀고 내려놓는다. 올해의 마지막 날, 휴식과 충전으로 차분하게 보낸다. 내일 새롭게 떠오를 태양을 맞이하기 위한 경건한 의식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SBJ-MJ0HI

YO-YO MA Plays ENNIO MORRICONE, Gabriel’s Oboe, The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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