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고양이 Oct 13. 2023

발라드 오디션에서 교실이데아 부르기

일탈(2)

일종의 라이브 공연 모드로 돌입한 나는 일단 ‘필승’을 먼저 불렀다. '교실이데아'는 내가 대단히 아끼는 곡일 뿐 아니라 체력 소모가 꽤 크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은 일단 중얼거리는 랩으로 시작한다.


“난 버림받았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보기 좋게 차인 것 같아. ...”


마라맛 가사가 이어지고 난 다음,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알다시피 중반부이다. 머리가 깨질 듯한 쇳소리의 강력한 고음의 랩 부분이 압권인 곡이다.


“정말 난 바보였어! 몰랐었어! 나를 사랑한-다 생각했어!

내 마음도 널 사랑했기-에 내가 가진 전부를 줘버렸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곡은 진정 명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의‘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거야’라는 잔잔한 멜로디 부분은 웃는 듯 하면서도 비장한 느낌으로 불러줘야 한다. 매번 노래방에서 부를 때마다 100점을 받았던 필승, 나를 위한 노래 필승.

노래를 끝낸 나는 마치 적진 한가운데에 서지컬 스트라이크를 날린 승자의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당시엔 핸드폰이라는 것이 없었으므로 참가자들은 노래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의 휘둥그레한 눈빛에 난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도 나눠준 것 같은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오디션장은 원래 경쟁의 장이어서인지 다른 이들의 노래가 끝나도 박수를 치거나 하진 않았다. 잠시 파티 분위기를 만끽한 나는 편안해진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다음 노래 부르겠습니다.”


단언컨대, 교실 이데아는 반주가 없이 불러도 나쁘지 않은 곡이다. 신입생 환영회 때도 그렇고 무반주로 몇 번 불러본 적이 있다. 노래가 시작되면 단체로 손을 번쩍 들고 양옆으로 휘두르길 유도하며, 십대 같은 스무 살의 젊음을 발산했던 그 곡. 나의 18번곡.

다만 그때는 대체로 오밤중이었고 다들 취해있었다는 점이 현재와 큰 차이점이었다. 내로라하는 발라드지망생이 모여있는 한낮의 눈부신 햇살 아래 그것도 새하얀 녹음실 안에서, 교실이데아 무반주 라이브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족해!


헤드폰을 통해 듣는 나의 목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내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자 앉아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초반의 분노에 찬 랩 파트를 명료하게 무사히 끝내고 나면, 후렴구 부분에는 야수가 포효하는 구간이 기다린다. 당시 크래쉬 보컬이 특유의 창법으로 굵직하게 내지르던 이 부분은 꽤나 이슈가 되었더랬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메일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얌전해보이는 여성이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헤비메탈 로커처럼 으르렁거리자, 사람들의 소요가 느껴졌다. 이 파트는 허리를 굽힌 채로 부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세를 잡지 않으면 도저히 크래쉬 보컬의 그로울링창법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성대 소모가 커서 한번 부르고 나면 몇 시간 동안 목소리가 안나오는 무서운 구간이다. 노래를 다 부르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몇몇이 무슨 상황인가 보려고 일어나 있는 것이 보이자 뭔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가 소심하게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어떤 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나의 노래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내 순서는 오디션에서 마지막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십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후 담당피디는 오디션 합격자들을 호명했다. 내 이름은 그 명단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호명을 끝내고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잠시 남아주시겠어요? 할 얘기가 있는데.”


삼십대 초중반쯤 되어보이는 피디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면 혼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설마 내가 합격이라도 한 것인가. 무료 공연을 끝내고 가뿐히 일어나려고 했는데 공연비라도 받는듯한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골자는 이러했다. 실력은 좀 다듬어야겠지만(노래를 못불렀다고 말하지는 않는 점잖은 분이었다) 연습실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와서 재능을 좀 키우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친절히 설명도 덧붙여주었다.


“이런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이번 오디션에서 원하는 이미지랑은 안맞아요. 하지만 전공이라던가 느낌도 그렇고, 여러가지 고려해볼 때 ‘상품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날 모든 가치에 열려있던 나에게 그 말은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가치가 있다니. 그 말의 함의까지 고려해서 격렬히 항거하기엔 그들과 오디션을 본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요일에 고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지, 어떤 분야에 주력하고 싶은지 묻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다정했다. 아까의 공연이 즐거웠기 때문일까. 그보단 내가 느꼈을 일종의 민망함에 대한 배려에 가까웠던 것 같다.


집에 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새로운 세계에서 잠시 주인공이 된 기분 그 이상이었다. 마치 내가 살던 단일 우주가 다른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엿보기라도 한 기분.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사람들은 각자의 우주에서 미친듯이 열심히 흥미진진하게 살고 있었다.


당시 이십대 초반의 나는 마치 우주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를 새삼 확인하고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훨씬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세상 너그러워진 채로 살던 나에게 누군가가 전철역에서 말을 건 것은 그로부터 몇주일 후였다.


“어머나! 조상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조상복이 많으시네요.”


아 너희들이구나. 이들에게는 이미 수차례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에 여러 명을 만나서인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대사를 건넸다. 주로 이용하던 이 전철역에 가면 이들 남녀가 쌍을 지어 대강의 인상을 보며 말을 건네곤 했다. 승리의 여신 모드를 유지한 채 살던 나는 이들이 사뭇 다르게 보였다. 평소같았으면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피해갔을 터였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앳되보이는 그 여성의 얼굴을 찬찬히 훑으며 말했다.


“그래요? 제가 조상님 복이 많은가요?”


(다음 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