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비가 부슬부슬 왔다. 한여름 밤의 더위를 날리기에 좋은 날씨였다. 비는 새벽까지 왔고 창문 넘어 들리는 빗소리 때문인지 나는 아주 깊은 잠이 들었다. 18년을 같이 산 내 동생, 세상 최고의 내 고양이는 그 날 새벽에 죽었다. 아침에 출근할 준비를 하며 일어나보니 거실 한가운데에 고양이가 옆으로 누워있었다. 가늘게 눈을 뜬 채로. 난 잠옷을 입은 채로 웅크리고 앉아서 고양이를 살짝 쓰다듬었다. 몸은 차가웠고 아주 딱딱했다.
내 고양이를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하늘의 별이 된다고 하던데. 주인이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되면 긴 털을 팔랑거리며 제일 먼저 마중나온다고 하던데.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위로가 되지 않는 부질없는 말장난같이 느껴졌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엄청난 공포가 나를 지배할 뿐이었다. 18년이나 같이 산 고양이가 하루 아침에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조차 난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고양이가 새벽 3시경에 몇 번 야옹거리길래 거실로 나와서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 대화일줄 몰랐다며, 그럴 줄 알았으면 좀더 다정하게 말할 걸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떠나려고 거실 한가운데에서 떠났나봐."
죽은 고양이를 들어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해.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남편에게라도 하고 갔다니 다행이었다. 고양이의 눈은 감겼는데 입은 잘 닫히지 않았다. 부드러운 담요를 꺼내 앙상하게 마른 고양이를 덮고 구석에 잠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회사에는 출근을 못한다고 연락한 후,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전화해서 화장터까지 가는 차를 불렀다. 차가 올때까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이 날 아침,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어떡하지’였다. 그것은 실제로 질문이라기 보다는 헤어지는 슬픔이 정신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무력감을 표현하는 가장 짧은 형태의
말이었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무기력한 존재구나. 고양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같이 가달라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우리 고양이가 떠나려고 어제 밤에 그렇게 비가 왔구나'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색 대형밴이 집 앞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상냥하고 다정했던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고 또 울었다. 밴이 멈춘 곳은 녹음이 우거진 교외에 세워진 깔끔한 건물이었다. 바로 앞에 작은 계곡이 있어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곳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장례업체 측에서 미리 요청해서 보내준 내 고양이의 한창 때 사진들이 1층 로비 여기저기에서 엄마와 나를 맞이했다. 사진 속 아기 고양이는 앙상한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볼도 통통했고 목둘레털은 힘있고 풍성했으며 눈빛은 생기넘치고 발랄했다. 어릴 적 사진들과 그 속의 추억들이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져, 슬픔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촛불이 켜져있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들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 있다면 이 음악일 것이다. 몇년을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피아노가 도레미 음계를 가지고 이렇게 내장을 쥐어짜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줄은 몰랐다. 음악이라는 것이 죽음이 주는 비통함을 수천수만배로 늘려도 된다고 누가 허락한 것일까. 나와 엄마는 몸 안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두 명의 직원이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들어 관에 넣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 나누십시오."
나는 고양이의 세모난 귀를 만진다. 동그란 눈 주위와 분홍색 코를 쓰다듬는다. 고양이 등 부분의 조금 늘어나는 부분을 어미 고양이처럼 살짝 잡아당겨 주기도 하고, 등도 천천히 어루만진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콧등 위도 엄지 손가락으로 몇번 쓰다듬는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앞발의 말랑한 분홍색 살을 살짝 눌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양이가 살아있었다면 얼른 발을 뺐을 것이다. 안녕, 내 고양이.
"한번만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줄텐데. 한번만, 단 한번만 다시 만나서 너를 안아주고 싶어. 마지막에 아플 때 잘 돌봐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꼭 다시 만나자."
고양이는 갈색 나무관에 들어간 채 화장하는 곳으로 떠났다. 한시간쯤 후에 다시 돌아온 고양이는 동글동글한 하늘색 구슬이 되어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투명한 유리병을 조심스레 천으로 감싼 후 핸드백에 넣었다. 집에 와서 유리병은 고양이 사진액자, 고양이 참치캔, 쥐모양 장난감과 함께 장식장에 올려놓았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원한 이별 앞에서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세상 최고의 고양이'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죽음과의 거리보다 충격적인 것은 다음날 아침의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신기해보였다. 언젠가 다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봤을텐데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다시는 그리운 이들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단 말인가.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세상이 잿빛으로 보였다. 나는 컬러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욕구가 없어진 인간이 되었다. 좋아하던 커피도 마시기 싫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출근해서도 책상 바닥만 쳐다보다가 돌아왔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대체 어떻게 달랠 수 있는지 안내서도 읽었다. 사후 세계도 검색했다. 한 지인은 '나의 온전한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천국에서 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을 찾아서 보내주기도 했다.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부엌 구석에 더 이상 없을 뿐인데, 세상이 텅빈 것 같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급행 지옥철을 타고 집으로 뛰어오던 삶이었다. 집에 와서도 할 일이 쌓여있다는 이유로 노령의 아픈 고양이와 제대로 시간도 보내지 못하던 나였다. 고양이가 죽은 후에는 우울감에 휩싸여 몇날 몇일을 느릿느릿 움직였다. 집에 오면 저녁도 먹지 않고 벽에 기대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급행 전철을 타지 않았다.
잠들기 전, 마음이 너무 힘들면 닥치는 대로 기도를 했다. 고양이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내 동생, 내 사랑. 세상에서 제일 착한 나의 예쁜 고양이. 한번만 더 쓰다듬어 주고 싶다. 한번만 더, 5분만 더 이야기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1년 전으로 돌아가서, 너가 건강했던 때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부터 다시 잘 돌봐주고 싶다. 아니 18년 전 너와 내가 젊고 건강하고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너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 그때의 너가, 그때의 내가, 그때 하루종일 달라붙어서 낮잠도 자고 깔깔 웃으며 장난치던 너와 내가 사무치게 그립다. 너가 없는 세상이 너무 차갑고 무서워. 꿈 속에서라도 좋으니 한번만 더 만나자. 다음에는 내 동생으로 태어나기로 했는데. 우리 그러기로 약속했잖아.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쯤 지났을 무렵, 퇴근하고 집 앞의 전철역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마른 하늘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고양이는 어디까지 갔을까. 갑자기 비가 오는 걸 보니 중간에 또 다른 다리를 건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였다.
"제가 우산 씌워드릴까요?"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어려보이는 여자가 미소를 띄며 말을 건넸다. 어찌나 말투가 경쾌한지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 여성을 쳐다보았다. 그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져서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처럼 느껴졌다. 내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우주의 시간이 어딘가에서 엉켜서 고양이가 떠나고 일주일 만에 여기까지 오게 된걸까. 내 동생으로 태어나도록 신이 허락했지만, 나의 시간에는 아직 그 결정이 닿지 않은걸까. 그래서 이렇게라도 마주친 걸까. 제발 그런 것이면 안되는 걸까.
"아 정말 감사해요. 우산을 사야하는데 그럼 저기까지만 씌워주시겠어요?"
나는 가까스로 차리고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같이 가요."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그녀. 약 십미터 남짓한 거리의 가게까지 가는데,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며 낯모르는 나를 비로부터 보호한다. 가게에 다다르자 안녕히 가시라는 말까지 다정하게 건넨다. 천천히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감사하다는 말을 간신히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다시 한번 그녀를 쳐다봤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일수도 있는데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
"너무 고마웠어요."
나는 정말이지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신기하게도 당황하거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특유의 밝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뒤돌아서길 기다려주었다. 나는 가게 문에 들어설 때까지 우산을 들고 서있어주는 그녀를 등 뒤로 느끼며 한 발을 내딛었다. 안녕. 이젠 정말 안녕. 사랑스럽고 멋진, 세상 최고의 내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