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고 멘탈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있어서는 안되는 그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나는 원래 물건을 잘 잃어버리곤 했는데, 자잘한 물건들을 잃었을 때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가리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나의 뇌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위로하곤 했다. 어른들 말씀 중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건은 물건일 뿐, 정말 중요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십대의 나는 나에게 행운을 준다고 일컬어지는 아이콘들을 사랑했는데, 탄생석 루비, 사자자리, 해바라기, 빨간색, 숫자 1, 숫자 11 이런 것들이었다. 유아기 때는 재미로 즐겼던 것 같고, 초등학생 때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지식으로 즐겼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적같은 의미로 즐기게 되었다. 즐기다 보면 또 좋아지는 법이다. 해바라기 시계, 붉은색 코트, 사자무늬 방석 이런 것들로 내 방을 채우면 기분이 좋았다.
수능 시험을 앞둔 열아홉 생일날, 엄마는 스무 송이가 넘는 커다란 해바라기들을 그보다 더 큰 화병에 꽂아 선물했다. 해바라기들은 고흐의 그림에서 본 것보다도 눈부신 황금색이었다. 표정이 보일 정도로 얼굴이 커다란 해바라기 스무 송이가 다같이 햇빛을 받는 모습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그 해 수능을 100일 앞둔 날, 엄마는 내게 수능 '백일 반지'를 선물했다. 매일 독서실에 갔다가 새벽에 오면 엄마를 만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시 회사일로 바빴던 엄마는 수험생을 잘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백일 반지라니, 돌아기도 아닌 내가 반지를 선물받은 것이다. 그것도 탄생석 루비와 작은 다이아몬드 두 개가 아름답게 박힌 골드링.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원하는 대학에 당장이라도 합격할 것 같은 느낌, 그야말로 절대적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루비도 좋고, 루비 반지도 좋았다. 루비 반지를 선물해준 엄마도, 엄마의 사랑도 너무나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 그 반지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좋아했던지, 항상 반지를 끼고 있었다. 다만 너무나 소중해서 손을 씻을 때도 빼고 씻었고 운동 시간에도 잠깐 빼놓곤 했다. 잘 때도 벽에 부딪칠까봐 빼놓고 잤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반지가 사라진 것이다.
수능이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절대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과 응원의 상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자꾸 숨이 막혔다. 해야할 공부는 산더미였고 오늘 할 공부를 미룰 수도 없었으니, 걱정할 시간마저 쪼개가며 걱정하느라 머리가 계속 아팠다. 틈나는 대로 반지를 어디다 두었는지 떠올려보며, 찾고 또 찾았다.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반지를 찾느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우주의 기운을 모아주는 절대반지가 아니라, 나를 방해하려는 어떤 거대한 세력이 내 반지를 빼앗고 나를 골룸으로 만들었다고 봐야했다.
학교 책상 서랍, 독서실 화장실, 책가방 주머니, 보조가방 주머니, 입었던 모든 옷들의 주머니, 방의 책상 서랍까지 대청소를 하며 수 일에 걸쳐 세번씩 네번씩 샅샅이 뒤졌다. 시공간을 뒤집어서 반지를 잃어버린 순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늘 잠이 부족했던 당시의 나는 반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공부를 하다가도 눈물이 났고 자다가도 눈물이 났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할 수도 없었다.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이었다.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지에 골몰했다. 이대로 수능 시험을 치르면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엎드려서 잠이 들면 꼭 악몽을 꾼 것처럼 깨곤 했는데, 반지를 잃어버리고 나서는 현실이 악몽이었다. 밤에는 독서실에서 오분 십분 정도의 쪽잠을 잤다. 그날은 잠들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대신 기도를 하고,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할 반지에게 말을 걸었다. 반지야 미안해, 사과도 했다. 너가 정말 보고 싶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꿈 속에서 꿈을 깬 것이다. 원래 꿈을 많이 꾸는 나는 '꿈에서 꿈깨기'란 가끔 있는 일이었는데, 이번 꿈은 뭔가 달랐다. 꿈의 배경이 독서실의 내 책상, 정확히 내가 앉아있는 그 의자였던 것이다. 의식 속의 나는 꿈 속의 나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꿈 속의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자다가 묘한 느낌으로 부스스 일어나 앉는다. 이윽고 꿈 속의 나는 의자 뒷쪽에 걸려있는 가방을 만진다. 꿈 속의 나는 그 가방의 앞주머니 지퍼를 잡는다. 지퍼를 열고 오른손 끝을 주머니 안으로 스르르 집어 넣는다. 가방 주머니의 가장 아랫 부분에 도달한 손 끝. 차가운 금속이 만져진다. 꿈 속의 나는 손가락 끝에 그 금속 덩어리를 걸고, 천천히 밖으로 끄집어낸다. 꿈 속의 나는 마침내 반지와 재회한다.
그 순간 꿈에서 깼다. 현실의 나는 조금 전 목도했던 꿈 속의 나처럼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분명 내가 몇번이고 확인했던 가방의 앞 주머니. 그 안에 그토록 찾던 반지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나의 손은 강력한 회의감에 고개를 내젓는 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의자 뒷쪽에 걸려있는 가방 앞주머니 지퍼를 열고, 꿈 속의 나처럼 손을 안으로 깊게 찔러넣는다. 그리고 기적처럼 느껴지는 손 끝의 감촉, 차가운 금속. 손 끝에 걸려 올라온 내 수능 절대반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멍한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본 것은 꿈인가. 말로만 듣던 예지몽인가. 아니면 내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를 무의식 속의 내가 알려준 것인가. 전설 속의 물고기를 낚은 어부도 이보다 황당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해리포터가 문제의 답을 구하지 못하고 쩔쩔맬 때 거울 속 해리포터가 해답을 제시하는 장면같은 짜릿함. 반지를 찾은 나는 혼자 웃기도 하고, 길게 심호흡을 해보기도 하며 솟구치는 감정을 추스렸다.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소리를 지르면서 팔짝팔짝 뛰고 싶었지만, 장소는 독서실. 1층 편의점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사서 돌렸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것 보다 기뻤다(라기 보다 진짜 그랬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다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날의 경험은 내 의식의 장벽을 뛰어넘어 문제가 해결된 벅찬 기억이자, 힘든 시기마다 꺼내보는 재미난 추억이 되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또다시 겸손해지고 마음도 조금 말랑해진다. 작지만 큰 상실을 겪고 어찌할 바 몰랐던 어린 나에게 선사된 강렬한 체험. 이제 인생 다 끝났다며 슬퍼하던 열아홉살 학생에게 삶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날의 꿈이 나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의미에 대해 오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