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이기에
아파트 청약이 당첨된 이후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건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청약에 넣으라고 아주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궁금해서 다시 물어보는 사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
어차피 안 될 거라고 하면서 무시하는 사람 등등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에게는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생네 가족입니다. 그때 당시에 저와 같이 전세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의 소식을 전하면서 청약을 강력하게 추천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미분양도 많았기 때문에 서울 어디든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책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아주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무조건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듣는 사람의 선택과 책임이기에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달랐습니다.
어떻게든 조금은 더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같이 잘 되고 싶었습니다.
여동생의 임신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처럼 (6년의 간절함과 기도 참고)
보통의 남매와는 조금 다르게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만 혼자 집이 있고 동생네는 계속 이사를 다니면서 사는 모습은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동생네 부부도 집을 꼭 사야 하고 청약을 넣어야 하고
그런 욕심은 사실 없었습니다.
본가에 모일 때마다 이래서 사야 하고, 이래서 청약에 넣어야 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오빠 말 믿고 한 번만 꼭 해라.라고 이야기를 한 뒤에 진짜 청약에 당첨되었습니다.
미분양이었기에 당첨은 당연했습니다.
당첨이 되자마자 혹시 집값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동생네 가족을 보면서 분명히 나중에 나에게 고맙다.라고
말할 시간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는 집도 생겼으니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오빠가 그동안 어떻게 살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기 때문에
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고마운 동생입니다.
동생네 까지 당첨이 됐으니 이제는 부모님 집이었습니다.
부모님 집은 자가였지만 한 곳에서 거의 30년을 사셨습니다.
부모님 역시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소원은 30평대에 살아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사를 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동생네 아이도 봐주신다고 하셨으니 큰 집으로 합가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현재 자금 사정이 어떤지 충분히 확인하고 현재 아파트 가격을
확인한 후 혼자서 임장을 다녔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서울에 갈 수 있는 곳은 다 임장을 다녔습니다.
집은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우선 1차적으로
제가 임장을 다니고 집까지 괜찮으면 그때 부모님께 같이 가자고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출도 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현재 직장도 안 다니시니 부담을 많이 가지셨습니다.
대출을 받기 않은 상태로 현재의 상태로만 알아보려니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주위의 부동산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분들께도 조언도 구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계속 임장을 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제가 1차적으로 임장을 끝낸 후 가족이 모두 모여서
그동안 임장한 이야기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가족의 동의가 끝나야 부모님과 함께 임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네와 어머니는 좋다고 하셨는데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정확하게는 “나는 여기에 뼈를 묻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집에서 동생네와 부모님이 같이 사는 건 현실상 말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다 모시고 임장을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
제가 1차적으로 임장한 곳 중에 괜찮은 곳을 추려서 3주 동안
주말마다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임장을 갔습니다.
각 동네마다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을 다 미리 해두고
현장에서 만나서 집을 구경하였습니다.
작은 곳에서만 사시다가 큰 평수의 집을 보니 보시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참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 동생, 저 이렇게 3명에서 다니니 서로 보는 눈이 달라서
각 집에 대한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왔습니다.
1주 차, 2주 차, 3주 차까지 임장을 다니면서 어떤 아파트가
왜 좋은지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3주 차까지 다닌 곳 중에서 괜찮은 곳을 또 추려서 또 가보았습니다.
예전에 글에도 적은 것과 같이 임장을 가려면 최소 3번 이상은 봐야 했습니다.
주말에 갔으면 평일에도 가보고, 퇴근하고 저녁에 가봤으니 아침에도 가보고,
하루 이틀 살 집이 아니니 더 신중하게 여러 번 방문해서 보았습니다.
최종 3개의 아파트를 놓고 가족 모두 다 같이 대화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임장도 안 가신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전 어머니를 모시고 살 테니 여기에 사시라고 까지 말을 하면서
딱 하루만 시간을 내어 달라고 말씀드리고 3개의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반대하시던 분이셨는데 다른 아파트를 구경하면서 표정이 달라지셨습니다.
역시 사람의 눈은 다 똑같은지 3개의 아파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파트는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임장을 시작한 것부터 하면 같은 부동산만 몇 번을 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3일의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 다 같이 고민을 하였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최종 결정을 하고 계약금을 입금하였습니다.
이사를 시켜드리기 위해 준비한 시간까지 하면 몇 달 동안 했던 일들의
1차적인 마무리 단계를 한 것입니다. 많은 생각이 들고 감격의 눈물까지 나왔습니다.
계약을 하고 중도금, 잔금까지 일정을 하고 그 사이에 이사 가는 집에
깨끗한 새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해야 했습니다.
큰 평수이니 인테리어 비용도 많이 나올 것이니 업체도 많이 알아보았습니다.
작은 업체가 아닌 큰 업체 위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인테리어 금액도 커서 혹시나 잘못된 일이 생기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업체만 선정해서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총 5개의 업체를 미팅하고 최종 1개의 업체를 선정해서
인테리어디자인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잔금까지 끝내자마자 인테리어 공사가 들어갔습니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 1주일에 한 번씩 미팅을 하면서 어떤 디자인의 집으로
만들 것인지 디자이너와 함께 고민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갔습니다.
처음 공사 시작할 때 관리사무소 가서 허락을 맡고 위아래로 5개 층 거주자 분들에게
작은 선물과 함께 인사와 양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공사 중간중간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 간식도 사드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크하면서 거의 두 달 가까이 인테리어 공사를 하였습니다.
기존 살고 있는 집의 이사는 새로운 집 공사가 끝나는 날로 해 놓았습니다.
기존 집을 매도하지 말고 전세로 주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건
어떤지 몇 번을 설득했지만 이것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돈으로 전세를 주고 이사를 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이것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아버지가 깨우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매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테리어가 끝나고 이사하기 전날 두 분을 모시고 이사 갈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에 보시고 공사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하셨으니 처음 보는 것입니다.
러브하우스처럼 안대를 풀어주세요. 외치며 집을 들어갔습니다.
두 분은 처음으로 이렇게 큰 평수의 집으로 이사를 오는 것도
행복하신데 공사까지 잘 끝내서 깨끗한 곳으로 이사를 하는 마음이 좋으신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의 청약 당첨, 동생 청약 당첨, 부모님 집 이사까지 몇 달 동안
고생을 하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같이 잘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반대도 하셨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로 이렇게 행복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아들이자 오빠지만 믿고 따라와 준 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