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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Oct 14. 2024

사살


 대한민국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


 깊은 산속은 정적에 빠져 짐승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사삭'


 낙엽이 떨어지며 공기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산속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있었다.  나뭇가지로 둘러싸인 길쭉한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이며, 멀리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톡톡톡'


 강현은 온몸을 나뭇가지로 완전히 위장한 채, 단 하나의 목표물을 주시하면서 조준경을 수정하고 있었다. 거친 산속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차가움이 강현의 감각을 자극했지만, 강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손가락 한 번 까딱할 기회를 잡기 위해 강현은 이틀 동안 그 자리에서 목표물을 기다리며 미동도 없이 숨죽이고 있었다.  


 ' 바람은 왼쪽에서 5km/h, 거리는 850미터...' 


 강현의 뇌리는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 한순간의 기회를 잡으면 족했다. 수없이 많은 반복과 훈련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마침내, 어제 하루 두문불출 했던 목표물이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 드디어 완벽한 순간이 왔다. 


 목표물이 고정되었고, 바람도 멈춘 듯했다. 강현은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강현은 숨을 멈추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에 미세한 압력을 조금씩 높였다. 


 "철컥!"


 소음기가 장착된 저격총에서 순간적으로 탄환이 빠져나갔다. 




 헉헉...


 강현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산속을 헤매는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커! 커!


 멀리서 군견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군견부터 처리를 했지만 아직 한 마리가 남았다. 그놈이 벌써 가까이 소리가 들릴 만큼 따라온 것이다.


 강현의 옆구리엔 손톱 만한 구멍이 나 있었고, 쿨럭 쿨럭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잠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강현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직은 아니야. 그놈... 그놈을 죽여야 이 고통이 끝나는 거야."


 강현은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조금씩 기어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강현이 준비해 둔 참호가 나온다. 참호에는 총상에 대비한 구급약품들과 야전식량이 준비되어 있었고, 추격하는 군견을 따돌릴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다.


 "조금만 더..."


 강현은 혼자서는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의미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원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자신의 손으로 그놈의 명줄을 끊어 놓고 싶었다.

 "크윽... 한 발... 한 발 밖에 못 맞췄어...."


 강현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무의식 속에서 참호를 향해 기어갔다.  


 이틀을 굶었고 총을 한 발 맞았다. 다행히 장기는 피해 간 듯싶었지만, 이틀 동안 흘린 피가 적지 않다. 서둘러 참호에 도착해야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을 강현 스스로가 잘 알았기에 강현은 모든 힘을 짜내 땅을 기었다. 기어가면서도 뒤처리에 소홀할 수는 없었다. 지나온 자리를 지우면서 낙엽을 다시 덮어놓는 작업이 강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다 왔다..."


 가까스로 참호에 도착해 입구를 닫았다. 참호는 반 평 남짓한 크기로 성인 한 명이 누워 휴식을 취하면서 숨을 만한 공간에 군인과 군견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땅속 깊은 곳에 마련해 두었다. 


 강현은 미리 준비해 둔 구급약품을 꺼내고 손수건을 꺼내 입속에 욱여넣고  상처에 소독약을 뿌렸다. 마취제가 포함된 소독약이었지만,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크윽...."


 총알은 다행히 장기를 비켜나가면서 관통된 듯싶었다. 강현은 상처에 지혈제를 뿌리고 입속에 항생제를 털어 넣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며 정신을 잃었다. 




 강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슬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강현은 슬비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모든 것을 손수 가르치고 싶었다. 줄넘기하는 법, 자전거 타는 법, 숟가락 젓가락질까지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강현에게 하나뿐인 딸인 슬비는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아이를 싫어하던 강현이었기에, 자녀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슬비를 낳았고, 강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빠!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조아, 히히"

 "우리 슬비가 학교 가면 친구들이 제일 좋을 걸?" 

 "아냐! 그래도 슬비는 아빠가 제일 조아"

 "오구오구 내 새끼, 그래 아빠도 우리 슬비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슬비가 태어난 2005년 11월 16일 이후. 강현과 슬비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강현은 슬비가 크면 아빠가 슬비를 어떻게 키웠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해 줄 생각이었다.


 사진을 취미로 하던 강현은 슬비가 태어난 날부터 모든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모유수유를 끊고 분유를 먹던 날, 처음으로 몸을 뒤집은 날, 처음으로 네발로 기던날,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던 날, 처음으로 보행기에 올라탄 날, 처음으로 벽을 짚고 일어선 날, 처음으로 두 발로 걷던 날...


 강현은 슬비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기록해 두었다. 강현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즐거웠다. 강현은 자신의 인생이 계속 행복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슬비야... 눈 좀 떠봐... 아빠 무서워..."

 "슬비야!!"




 끔찍한 장면이 생각나자 강현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극심한 고통이 발 끝에서 머리끝까지 일순간 관통하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머릿속에서 슬비와 즐거웠던 때를 상상하는 것은 어느덧 강현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이틀 동안 경호원들과 군견들의 추적을 뿌리치며 가까스로 참호에 도착해 잠이 들었지만, 꿈속에서 슬비를 만난 것만으로도 강현은 정신을 차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만 하루가 지났다. 벙커 형태로 지어진 참호는 군견의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었기에 참호의 문을 열고 바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시간은 중요치 않아. 우선 체력을 회복해야 해."


 강현은 부스럭 거리며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우며 이틀을 더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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