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나의 슬비 4

슬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

by 슬비아빠

22.07.03
슬비야 오늘은 우리 슬비가 쓰러진 지 열흘째 되는 날이야. 엄마 아빠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우리 슬비 옆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어. 어제는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병원에서 자려다 원룸으로 왔어. 아빠는 또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지만 피곤하진 않아. 우리 강아지를 볼 생각에 오히려 힘이 나는 것 같아. 이따 봐~♡

어젯밤도 집중치료실에서 연락이 없었다. 주말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슬비의 상태를 체크하러 와주신 교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린다. 오늘도 우리 슬비가 무탈하게 아주 조금이라도 회복하길 빌어본다. 어제 슬비를 만나고 방으로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슬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 할 말이 이렇게 많은데 몇 마디 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우리 슬비가 힘내는데 전혀 도움을 못주다니... 정신을 더 차려야겠다.

어제도 여기저기에서 걱정의 전화와, 문자를 보내주셨다. 페이스북에 수기를 올리는 것을 많이 고민했었다. 소통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기 위해서다. 전화기에 써놓고 실수로 날려버린 경험이 있었기에 보관에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었다. 저장을 위해 올린 글들이라 댓글을 거의 안 보고 있다. 내 글을 보는 이들이 많지 않기에 보관에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그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다. 우리 부부 둘보다는 더 많은 분들께서 함께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게 우리 슬비가 일어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슬비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오늘은 우리 슬비가 완쾌를 향해 일보 전진하는 날이 되길 빌어본다.

22.07.03 08:10


유리틈사이로 슬비를 보고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슬비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가슴이 철렁해서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20여분이 지나고 전공의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슬비의 상태를 말씀해 주셨다. 밤사이 괜찮았는데 새벽에 경련 몇 번해서 재우는 약을 늘렸고, 재우는 약이 들어가면 장기들 움직임도 줄어서 소화가 잘 안 되어 약이 남아있다고 하셨다. 폐에도 물이 조금 차서 제거를 했고 피검사는 잘 나와서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두 달마다 주치의가 바뀌는데 이제 다른 분이 오셔서 말씀해 주신다고 하신다.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왜 경련은 멈추지 않고 폐에 물이 차는 등 없던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일까? 의학지식이 없으니 모든 게 의문이고 모든 워딩이 무섭게 들린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긍정적인 워딩이 나오는 건 좋은 일이겠지. 우리 똥강아지! 이제 조금씩이라도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와야지! 힘내자!

오늘이 지나면 출근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집사람에게 모든 짐을 전해주고 가려니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으로 간들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일 출근해서 보고를 드리고 다시 올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려봐야겠다. 너무 이기적인 건가? 물론 모두들 아무 신경 쓰지 말고 아이에게 전념하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얼굴 뵙고 직접 말씀을 드려야 함이 도리겠지.

우리 슬비는 금요일 귀가 때마다 저녁은 마라탕으로 정해져 있다. 처음엔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지만 요즘은 매장에서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먹는 걸 좋아한다. 이 글을 읽으면 분명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먹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매장에서 먹는 걸 좋아하는 거라고 하겠지. 나는 마라탕을 처음 접했을 때 이걸 왜 먹냐는 반응이었으나 이젠 나름 맛나게 먹는다. 우리 똥강아지가 좋다는데 뭘 못하겠냐는 생각으로 몇 번 가다 보니 이젠 나도 잘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둘이서 마라탕을 먹으며 슬비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고2 딸과 아빠의 대화 주제가 많지 않아서 집에 오면 엄마랑 계속 이야기를 한다. 가끔 숙제를 위해 시사나 정치적인 질문을 할 때를 제외하곤 슬비와 단둘이서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마라탕을 먹는 시간이 유일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이젠 마라탕을 먹지 않아도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그 시간을 간절히 기다릴게 이슬비~


울똥강아지 아프지 않았더라면 기말고사 끝난 주말이라 친구들과 실컷 놀다 오늘 학교로 귀교하는 날이네... 지금 시간이면 귀교 준비하느라 분주할 시간인데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쩌냐?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병원 썰을 풀어줘야지~

아까 집중치료실 유리틈으로 보니 새로운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하는 것 같던데 좋은 분이셨으면 좋겠다. 다들 좋으시지만 우리 슬비의 병과 상성이 잘 맞는 그런 선생님이길 빌어본다. 종교가 없는 내가 이렇게 기도할 일이 많아지다니... 부모님이 불교시라 아무래도 절이 편해서 슬비가 경대병원 온 둘째 날 팔공산 동화사에 갔었다. 초를 사서 슬비의 쾌유를 빌다가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눈물을 닦는데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왔었기에 지금은 병원에서 5분 거리 이상은 나가지 않고 있다. 병원에 있으면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리를 지켜야 한다.

집중치료실 유리틈이 두 군데다. 아래쪽 틈사이로 보니 슬비의 발가락이 보인다. 슬비 엄마는 항상 우리 슬비는 아빠 미니미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아빠를 쏙 빼닮았다. 특히 발은 그냥 똑같다. 그런 슬비의 발가락이 보인다. 집중치료실에서 우리 슬비를 처음 봤을 때는 오열했다. 의사 선생님의 더 이상 나빠지진 않는 것 같다는 말과 안정화 되어가는 것 같다는 말 때문인가? 지금은 오열까진 하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눈물도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인간의 적응력 때문인가?

그래도 습관적으로 슬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운 좋게 마침 주치의 선생님께서 슬비를 보고 계셨다. 어제랑 큰 차이는 없고 약을 많이 써서 혈구(혈소판 등) 수치 낮긴 한데 우선 지켜보고 계시다고 했다. 오늘 CT를 찍으려다 뇌파가 약간 흔들림이 있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고 내일이나 모레 뇌척수액 검사, MRI 등 하려 하신다고 했다. 경기가 있다 보니 암모니아 수치가 높긴 한데, 어제보다 떨어졌고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간, 신장 기능도 아직 괜찮다고 하셨다. 큰 걱정을 덜었다.

우리 똥강아지는 잘 해내고 있구나! 엄마 아빠는 항상 우리 슬비를 믿고 있단다. 엄마 아빠한테 친구집 간다고 거짓말하고 혼자 서울로 놀러 갔을 때도 엄마 아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지... 물론 엄마의 촉이 발동해서 금방 걸렸었지만, 이번에도 엄마 아빠 몰래 혼자서 멀리 외유를 떠났구나. 아빠를 놔두고 가다니! 거긴 좋은 곳이 아니니까 어서 돌아오렴.

일요일인데도 전공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기에 오늘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긴 한가보다. 슬비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여기서 글과 마음으로밖에 응원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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