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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Oct 11. 2024

희중과의 만남


 강현은 슬비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등지는 것만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강현의 독한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약속을 실행하려 길을 나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몇 시간을 정처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강현은 높은 다리로 향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슬비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난간 위로 올라서려 할 때, 강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필... 이럴 때..."


 이미 몇 개월간 수없이 걸려오던 전화를 무시하며 받지 않았던 강현에게 안부전화를 물어올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젠 가족들 조차 강현을 찾지 않았기에 더 이상은 전화 올 곳이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애 서 무시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강현 씨, 저는 희중이라는 사람입니다. 저도 강현 씨처럼 아들을 잃었어요. 강현 씨, 내가 알아낸 게 있어요. 슬비는 백신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백신과 크로노스 바이러스 뒤에는 어마어마한 음모가 숨겨져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다리가 풀린 강현은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고 전화기 목소리의 주인공을 기억해 내려고 애써본다. 


 "더 자세한 말씀은 전화로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만나야 합니다."


 강현은 희중이 정해준 약속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카페 입구에서는 역시나 백신을 2차까지 접종했다는 인증을 마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슬비를 죽게 만든 백신을 접종했다는 인증을 하겠다는 건가?'


 강현은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인증을 하고 있는 카페 직원의 마스크 너머로 서늘한 눈빛이 느껴진다. 내 인증을 받아야 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지옥문을 지키는 저승사자의 단호함이랄까? 강현은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친다. 


 "강현 씨 여깁니다."


 카페 안쪽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마스크를 썼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희중의 날카롭지만 선한 눈빛. 마주하고 앉은 강현과 희중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자식을 떠나보낸 이심전심으로 그렇게 둘은 한참을 말없이 찻잔만 기울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강현이었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는 뭐죠? 슬비가 백신 부작용이라고요? 거대한 음모는 또 뭡니까?"


 "강현 씨,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아... 네... 실례했습니다."


 강현은 다급한 마음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는 것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현은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지만 희중이 다음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저도 백신 부작용으로 23살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들을 잃고 나서 실의에 빠져 죽을 날만 기다렸죠."


 "네.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궁금했습니다.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말이죠. 그래서 조사를 시작했어요."


 "조사요? 어떤 조사를 말씀하시는 거죠?"


 "제 군대 동기가 국정원에 있습니다. 제 아들놈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가 이상한 말을 했어요."


 "이상한 말이라면..."


 희중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하필 너에게 이 일이... 희중아, 힘내라."


 "그래, 고맙다. 근데 하필 이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아니야. 경황 중에 그냥 말이 헛나왔어."


 "너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어디 출신인지 잊었어?"


 "아니야. 정말이야. 그냥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거야."


 "그래. 일단 알았다. 밥이나 먹고 가."


 희중은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인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군생활을 했다. 그들은 전 세계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블랙요원 출신으로 희중은 전역한 뒤 평범한 삶을 살았고 희중의 동기 인수는 국정원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희중은 시간이 흘렀지만 인수의 아주 작은 틈을 놓칠 리 없었다. 


 "밥은 잘 먹었나? 인수."


 "그래, 잘 먹고 가네. 힘내시게. 희중."


 "잠시만, 인수. 혹시 내게 할 말이 있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힘내란 말밖에 내가 해줄 말이 또 뭐가 있겠나?"


 "인수.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해. 정말 할 말이 없어?"


 인수는 희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희중은 인수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모습에 의아했고 분명히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때 인수가 입을 열었다.


 "희중. 내 이야기 잘 들어. 이건 거대한 음모의 한 조각이야. 너무 거대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거대한 음모? 어떤 음모지?"


 "예전 우리 팀이 몰살당할뻔했던 작전 기억나?"


 "당연하지. 중국의 한 외딴 연구소에서 인질 구출하던 작전이었지.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야."


 "그래, 크로노스 바이러스는 그곳에서 만들어진 거야. 실수로 유출된 거고."


 "뭐? 그게 사실이야?"


 "그래, 우리 같은 행동 대원은 작전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우연히 우리 작전 기록을 보게 됐어.  우리는 당시에 천운으로 살아난 거야. 정말 너무나 운이 좋았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야. 분명 거대한 음모의 한 조각이라는 게 내 결론이야. 희중. 몸조심하게. 그럼."


 희중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강현은 가만히 희중의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의 실망을 하며 말했다.


 "희중 씨,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인터넷에서 음모론으로 돌고 있는 썰들 아닙니까? 그것으로는 거대한 음모라 하기엔 너무 빈약한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저는 인수 외에도 다른 정보원들과도 친분이 있어요. 그래서 더 깊이 조사해 봤습니다. 결론은 백신도 크로노스 바이러스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더 복잡한 음모가 있어요. 자세한 건 차차 이야기합시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증거는 확보했습니까?"


 "아니오. 저는 이제부터 그 정황에 대한 증거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강현 씨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방해나 안되면 다행이겠네요."


 "아닙니다. 강현 씨는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상황에 대한 분석이 날카롭습니다. 그동안 쭉 지켜봐 왔어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죽으려던 목숨인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해봅시다!"


 그렇게 그들의 진실을 향한 싸움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면을 하고,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면서 여전히 검열로 진실의 유통을 막고 있었다. 진실에 다다 가기 위한 동료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자녀를 잃은 두 아버지의 처절한 싸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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