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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Oct 11. 2024

절망의 시간


 강현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슬비였다.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순간도 자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강현에게는 그야말로 완벽한 딸이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강현의 딸로 세상에 나타나준 자체가 자랑이었다. 어느 하나 빼어난 구석은 없었지만 어느 하나 모자란 구석도 없는 아이였다.

 자신의 딸이기에, 자신과 아내의 딸이기에 항상 자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어릴 적 슬비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였다. 약간은 내성적인 강현 부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밝고 명랑하면서도 평범한 아이였다. 중학교에 진학해 축구를 좋아하게 되어 시험기간에도 새벽까지 EPL, LALIGA를 즐겨보던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겠단다. 성적이 중상정도였는데 반대라기보다 어려움을 걱정했다. 하지만 결국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말았다. 강현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평범한 슬비도 강현 부부의 자랑이었는데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처음으로 기숙사에 데려다 놓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난다. 2주에 한 번씩 귀가를 하고 귀교시킬 때마다 너무 섭섭하고 안타까움에 속을 태워야 했다.

 꼴찌를 해도 괜찮으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묵묵히 하나씩 만들어보라고 했다. 공부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고 학창 시절을 즐기길 바랐다. 시험기간에도 쉬엄쉬엄하라고 했고 모자란 공부는 1년에 1등급만 올려보라고 했다. 귀가 때마다 강현과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교우관계에 조언을 해줬고 스스로 알아서 하길 권했다. 강현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잘 적응하고 무척이나 잘해나가고 있었다. 학생부와 동아리에 가입해 리더십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작은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빠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해 주며 잘 처신하길 권했다.





 강현의 독백.

 나는 항상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길 원했다.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드라이브도 다녔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부녀지간이라 생각했다.


 나의 하늘은 단 보름 만에 무너져 내렸고 나의 가슴은 날카롭디 날카로운 비수에 난자당했다. 일분일초가 지나고 시간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상처와 아픔은 더욱 커져간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이었던 나의 자랑 나의 슬비가 나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2005년 11월 16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나의 시계는 17년도 채우지 못하고 2022년 7월 7일 새벽 4시 16분에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우리 슬비가 떠난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고 우리 슬비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 인생 모든 것을 담은 꿈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 나란 존재가 지워져 버렸고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던 나의 분신의 존재가 지워져 버렸다. 슬픔이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고 견디지 못할 고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할 빈자리를 보며 우리 슬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슬비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숨쉬기 힘들 만큼 아픔이 밀려온다. 우리 슬비가 새벽에 떠나서 그런 걸까? 새벽에 잠이 깨면 아무런 준비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 슬비가 써내려 온 블로그를 찾았다. 마지막 블로그를 포스팅하지 못한 채 우리 슬비는 떠났다. 독한 마음을 먹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아이돌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한 단락이 눈에 띄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아침에 정신력으로 등교했고 너무 아파 헛구역질까지 했다고 한다.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왜 참았을까?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할까? 이제와 아쉬워한들 무엇할까?

 불쌍한 내 새끼, 귀가하는 주 금요일에 통화하면서 토요일에 병원을 가자고 했다. 당연히 알았다고 했고 토요일 아침에 병원 가자고 깨웠다. 이제 안 아프다고 안 가도 된다고 해서 그냥 재웠다. 알고 보니 그날에도 새벽까지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지 새끼 아픈 것 하나 돌봐주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내가 아빠라고 불릴 자격이 있었던 걸까? 내가 아빠로서 자격이 없었기에 우리 슬비를 저렇게 데려간 걸까? 

 내게 남은 거라곤 우리 슬비의 흔적들과 사진밖에 없다. 이제 슬비의 육신은 불태워져 뼛가루만 남았고 나의 슬비는 영원히 볼 수 없음인데 눈물을 흘릴 자격이 내게는 있는 걸까? 나 스스로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우리 슬비를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 우리 슬비가 없는 일상이 과연 나에게 돌아갈 의미가 있을까? 


 그 의미 없는 일상을 살아갈 의미도 자신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건 우리 집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하니까 그래서 그냥 살아가야 한다. 이 아무런 의미 없는 세상을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희망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 세상을 유지하는 부품하나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에게 더 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그렇게 마음에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슬비야 아빠는 이렇게 남은 일생을 후회와 뉘우침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슬비의 명복을 빌께. 거기에 있는 근심과 걱정, 아픔과 고통, 슬픔과 애환은 모두 아빠에게 보내렴. 그리고 우리 슬비는 그곳에서 오로지 사랑과 행복, 기쁨과 환희 같이 좋은 것들만 누리며 살길 바랄게. 언젠가 아빠에게 물었지. 다시 태어나도 엄마랑 결혼할 거냐고. 아빠는 당연하다고 말했었지." 

 "그래야 우리 슬비를 또 만날 수 있으니까... 아빠는 다음 생에도 엄마를 만날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때는 오래도록 아빠 딸로 있어줘. 슬비야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슬비야 사랑해."



 슬비를 떠나보낸 강현은 모든 것을 체념했다. 세상을 살아갈 의지도 희망도 없었다. 자신이 왜 살아있는지 의문이었고, 왜 슬비 대신 아파주지 못했는지 원망스러웠다. 슬비를 지켜주지 못했음에 너무나 큰 자괴감이 들었다. 슬비가 없는 곳에서 강현은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지쳐서 쓰러져 잠들고 깨어나면 또 술을 마셨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집안 곳곳에는 여전히 슬비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평소 사진을 즐겨 찍던 강현은 온 집안을 슬비의 사진으로 도배하다시피 했고, 고개만 살짝 돌려도 슬비의 흔적들이 강현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강현은 결심했다. 


 "슬비야,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갈게..."


 주변을 하나둘씩 정리하던 강현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도 백신 피해자인데 사람들이 모여 백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보라는 전화였다.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강현이지만, 동병상련을 겪은 강현은 왠지 끌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갈 때 가더라도 이유는 알고 가야겠지.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확인해 봐야 해."


 강현은 피해자들이 모인다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3개월 만의 첫 외출이었다. 강현은 지난 3개월 동안 술을 사기 위해 집 앞 마트에 간 것 외엔 집 밖에 나온 적이 없었다. 수염을 정리하고 집을 나선 강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범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자 낯설었다. 


 "그래. 결국 세상은 이런 거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줄 사람은 없는 거야. 당한 사람만 억울한 거지."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겠다고 모여 시위를 하고 정부에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강현은 강현과 비슷한 일을 겪은 유가족들과 조우했다. 다들 같은 목소리로 슬픔과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고, 억울함은 있었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찾진 못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병원 한 번 간 적 없이 건강했어요. 피곤하다며 일찍 자러 들어갔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생각도 못했죠. 12살짜리가 자다가 돌연사라뇨. 이게 다 백신 때문입니다."


 "맞아요. 우리 딸은 학교 갔다 와서 머리가 아프다며 갑자기 쓰러졌어요. 14살짜리가 뇌출혈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요?"


 어떤 아이는 집에서 잠자다 세상을 떠났고, 어떤 아이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질병들이 아니다. 노인들에게 일어나더라도 뉴스에 나올만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강현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저희 슬비도 갑자기 쓰러져서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런대도 정부는 백신과 상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이것들 다 때려 부숴야 해요."


 이러한 현실에도 정부는 그저 백신과 인과성이 없다며, 유가족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성의하고 무관심한 태도에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현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음을 느꼈지만, 그 무엇도 강현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지 못했다.


 "혹시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슬비를 살릴 수 있었을까? 슬비가 백신을 맞지 않았으면 지금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을까? 지 자식하나 지키지 못한 나 같은 놈이 이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나 같은 놈은 죽어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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