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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2. 2023

어느 저녁 풍경

  면회실에는 이 노인과 딸이 있었다. 전날 가족들이 면회 와서 외출까지 하고 온 분이라 좀 의아했다. 왜 또 왔을까? 무슨 문제가…?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요양보호사가 식판을 탁자 위에 놓고 갔다. 이 노인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급히 탁자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러나 넉넉한 실내화에 담긴 발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잔뜩 힘을 주고 있었지만 발은 실내화를 끌기에도 버거워 보였다. 순간적으로 발이 꼬이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얼른 발판을 펴서 발을 올려드렸다. 절대로 발판에서 발을 내리고 휠체어를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노인이 그걸 알아듣는 것은 그 순간뿐일 터였다.


  노인은 금방 숟가락질에 여념이 없어졌다. 뛰어놀다 들어온 예닐곱 살 아이였다. 맞은편에 앉은 딸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노인은 80이 넘었지만, 몸집이 크고 살도 제법 있는 거구다. 숱은 적지만 훤히 빈 곳이 없는 흰머리, 피부도 하얀 데다 윤곽이 뚜렷한 커다란 얼굴에 걸맞게 큼직한 코가 얼굴 한가운데 반듯했다. 80년이 넘도록 새겨왔을 주름살 또한 그리 깊지 않아 표정을 온화하게 해 준다, 요양원 어르신들 중에서는 신수가 가장 훤한 노인이다. 그러나 숟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입술 주변에 밥알이 묻고 국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렵게 집어 올린 반찬이 젓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앞치마만큼 커다란 꽃무늬 턱받이에 떨어지기도 했다. 


  딸이 반찬을 숟가락에 얹어드렸다. 그는 딸이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 즐거운지 주름살이 펴져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딸이 날마다 오니까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숟가락 너머로 자꾸 흘러내리는 밥을 떠 올리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딸이 아버지가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지 물었다. 이 노인의 대변 소동은 유난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식사하시는 노인 앞이라 고개만 저었다. 딸은 잠시 머뭇거리면서도 어머니가 집에서 모시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런 노인을 집에서?’ 


  어이없어하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녀는 새치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외출했을 때 아버지의 정강이에 상처가 있었단다. 엄마가 몹시 마음 아파해서 아버지 상처에 약을 발라 드리려고 왔다는 말이 신랄한 비난조였다.


  요양원에는 환자들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가족들이 더러 있다. 금방 임종을 할 것 같다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에 질린다는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발등으로 내려앉곤 했다. 그런데 이 노인의 가족들은 그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특히 노인의 아내는 주름진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도 눈에는 금방 눈물이 떨어질 듯 글썽였다. 


  이 노인이 요양원에 입소할 때는 거동은 물론 의자에 앉는 것도 힘든 와상臥狀 환자였다. 밥도 떠먹여 드려야 했다. 그래도 식탐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했다. 그런 노인이 정성스런 간호와 식사조절로 조금씩 회복되었다.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되고 혼자 밥을 떠먹게 되었다. 가족들은 그 모습에 놀라며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노인의 아내가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할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었다. 그들은 찾아올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고 면회실의 분위기도 가족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회복되어 가는 노인들이 요양원에서는 가장 문제 어르신들이 된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엄마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것과 같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이내 사고로 이어진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기저귀만 갈면 되는 것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아무 곳에서나 일을 저지르기 일쑤다. 화장실 바닥에 범벅을 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휠체어 위며 복도도 가리지 않는다. 보호자들에게는 처음에는 고마운 일이었던 것이 이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요양보호사들은 차라리 그냥 누워계실 때가 편했다고 푸념한다. 


  이 노인 정강이에 상처가 났다고 하니 불안했다. 혹시라도 혼자 움직이다 많이 다친 것이나 아닐까 싶었다. 얼른 바지를 걷어보니 긁어서 파인 상처였다. 노인들은 대부분 마른 피부에 가려움을 느낀다. 긁으면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없이 마구 긁어 댄다. 정말 심한 경우는 장갑을 끼우기도 하지만 그건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약을 바르고 밴드도 붙여주지만 돌아서면 떼어버리는 데는 달리 방도가 없다. 어제 요양보호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이 가족들이 면회를 오고 먼저 발견한 것 같았다.

 

  피가 맺힌 상처를 봤을 때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까 짐작은 갔다. 더구나 면회 올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의 아내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젊었을 때 미모가 쉽게 연상되는 곱상한 할머니가 남편의 상처를 보고 또 눈물지었겠구나 생각하니 짠하기도 했다. 그런다고 집으로 모셔가겠다니.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잊은 것일까.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던 노인, 그 노인을 돌보다 허리를 다친 그의 아내. 조금 좋아졌다고 해도 노인은 여전히 80대의 중환자였다.


  간호사를 불렀다. 상처를 본 그녀는 깜짝 놀라며 미처 발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에게 가족들이 집에서 모셔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다. 간호사는 펄쩍 뛰었다. 누구보다 노인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루에 몇 번이나 어떤 상태의 변을 보는지, 그걸 막기 위해 어떻게 약을 조절하고 조치하는지, 그치지 않는 식탐을 조절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밤이면 몇 번이나 일어나고 그때마다 기저귀가 어떻게 되는지도 말해주었다. 노인의 키와 몸무게까지 다시 깨우쳐 주며 말했다.


  “아버지가 집에 가시면 사흘도 가지 않아 어머니가 드러누우실 거예요.”


그러나 딸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자기는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가 마음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무책임한  말에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따님이 모실 거라면 모셔가세요. 그러나 어머니가 모실 거라면 생각도 하지 마세요. 며칠 후 두 분 다 모시고 와야 할 거예요.”


  딸은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자신은 모실 수가 없단다. 이 노인을 빤히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슬쩍 보니 한 젊은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젊은 날의 신성일을 연상시키는 남자였다. 


   “이게 누구예요? 영화배우 같네.” 


  간호사의 말에 딸의 얼굴근육이 꿈틀거리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요.”


  나와 간호사는 그 사진과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는 햇살처럼 웃고 있고, 식사를 마친 노인은 국물이 번져 허옇게 마른 입술 언저리에 밥알 서너 개가 붙어있었다. 간호사가 물티슈를 꺼내 닦아드리자 꺼억 트림했다.

 

  딸이 꽃무늬 턱받이를 한 흰머리의 아기를 허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무언가 말을 할 것 같더니 핸드폰을 덮었다. 핸드폰에는 어둠이 스며들고 창밖에도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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