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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0. 2023

죄 없는 자의 늪

  전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정 노인을 모시고 병원에 간 김 간호사였다.


  “의사가 막 야단을 쳐요. 이런 어르신을 왜 요양원에서 모시고 있냐고요. 당장 큰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대요.”


  정 노인은 84세의 어르신이다. 입소하던 날이 생각났다. 모시고 왔던 가족들이 면담이 끝난 후 돌아갈 때였다. 정 노인은 음악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프로그램실에 있었다. 분위기는 흥겹고 입소한 어르신들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한몫을 한 것인지 정 노인의 얼굴도 발그레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이 간다고 하자 그의 얼굴은 금방 창백해졌다. 이내 그의 눈에 가득해진 불안과 불신의 빛. 아들을 향해 화가 폭발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아내가 뭐라고 두어 마디 하자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이 사라진 후 그는 계속 밖으로 나가려고만 했다. 마치 동굴 속에 웅크린 짐승의 소리 같은 목소리가 목 안에서 가릉 거렸다. 그런 그를 다독이며 요양보호사가 살갑게 부축하고 생활실로 안내했지만, 발이 닿은 곳이 움푹 팰 것처럼 발걸음은 무거웠다.


  배정받은 생활실은 2층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맞는 밤. 그는 밤새 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다. 배회하는 노인을 보며 요양보호사 역시 잠을 설쳤다. 그런 밤은 길다. 그리고 다음 날은 낮이 없다. 그렇게 해서 노인은 밤낮을 바꿔버렸다. 


  불안한 침상에서 며칠이 지났다. 그는 전혀 침상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집에 갈 것처럼 늘 배회하고 서성였다. 어디선가 아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며 두리번거림이 조금씩 줄어들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아들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지병으로 폐부종을 앓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 헐떡였다.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했다. 그런 몸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침대 펜스를 내리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집에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그에게 열려있는 길은 없었다. 낙상을 염려하며 침대에 앉히는 손길도, 다정하게 건네는 말도 퉁명스럽게 뿌리쳤다. 그것들이 그에게는 모두 구속이었으리라. 그렇게 그는 요양원의 풍경 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돋을새김이었다. 


  끈적이던 그의 기다림은 조금씩 단단하고 날이 서 갔지만 가족들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기다림이 단단하게 뭉쳐지며 날 선 분노와 자리를 바꿨다. 그래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마저도 뭉툭해지는 것 같았다. 팽팽한 긴장감과 적대감도 체념이라는 각질이 되어갔다. 안타까움과 절망이 각질에 묻혔다. 그러나 가끔씩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번득이는 그의 눈은 휴화산이었다. 요양원의 시간은 추억과 애증, 불면과 배회, 통증과 무기력들을 버무린 속에 정 노인의 분노와 절망도 싸안고 지나갔다. 


  며칠 전부터 노인이 심하게 기침하고 헐떡이며 밭은 숨을 쉬었다. 걱정된 간호사가 인근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의사에게 된통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정 노인은 마침내 활화산이 되어버렸다.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막무가내로 소리치는 노인을 가족과 함께 가자며 간신히 달래 돌아온 것은 김 간호사의 기지였다.


  가족에게 전화했다. 정 노인의 아내가 받았다. 증세를 설명하고 의사의 권고를 전했다. 빨리 큰 병원에 모시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목소리는 절로 간곡해졌다. 그러나 전화기 건너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에도 차분했다. 아니, 골목 모퉁이에서 팽그르르 돌아가는 회오리바람 같았다.


  “병원에 가지 마세요.”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주사 한 대도 보호자가 동의해야 하고 약 한 봉지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입원 같은 일은 보호자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더 말을 붙여볼 수가 없이 단호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허공을 바라보았다. 입원 준비를 시키려던 복지사도 전화기로 흘러나온 말을 들었다. 그들도 잠시 마네킹이 된 것 같았다.


  요양원으로 복귀한 노인의 눈에서는 불꽃이 그치지 않았다. 호흡이 더 가빠졌다. 밤사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은 방 어르신들을 염려해 방을 옮겼다. 빈방에 마련된 침상 옆에는 초록 페인트를 칠해 선득해 보이는 철제 산소통이 서 있었다. 비강 캐뉼러를 삽입했다. 산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 노인의 헐떡이던 호흡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속내를 보이지 않는 산소통을 초병으로 세우고 노인은 잠이 들었다. 참 오랜만의 편안한 잠이라고 했다.


  정 노인 아내의 말은 요양원 내에 슬금슬금 펴졌다. 정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촉촉했다. 노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이내 그들의 눈빛은 적개심을 쏘아냈다. 마주하고는 차마 못 하는 투정까지….


  “세상에 어쩌면 이런 어르신을 병원에 안 보낼까. 정말 못됐어. 사람도 아냐.”


  사흘 후, 산소통 세 개가 비워지고 난 다음 호흡이 다소 안정된 노인은 당신의 생활실로 돌아갔다. 그는 더 이상 배회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멍하니 창만 바라보았다.


  요양원 노인들의 병세는 대부분 비슷하다. 진창에 빠진 것처럼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아주 조금씩 가라앉는 늪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시간의 추가 기울면 조용히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목숨. 정 노인도 그렇게 가쁜 호흡에 매달린 시간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추가 기우는 날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정 노인의 아내가 찾아왔다. 보호자의 방문이라 반갑게 맞아 면회실로 안내했지만, 시선을 마주치긴 좀 민망했다. 면회실에서 무표정하게 마주 앉은 두 노인 사이로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 틈을 간호사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갔지만, 말소리는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요양원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정 노인의 아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렵게 입을 뗐다. 


  “병원이요? 거기 가면 살려만 놓지, 고쳐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한숨처럼 쏟아지는 이야기. 처음 입원했던 때 금방 나을 것이라는 희망, 3년 넘는 입원과 퇴원의 반복, 중환자실을 전전하며 조금씩 사라지는 희망 대신 자리를 차지한 절망, 병수발에 지쳐 함께 병들어 가는 몸, 그리고 통장의 잔고가 사라지는 두려움과 남아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의 막막한 내일이 한숨과 함께 부려졌다. 


  정 노인과 나이 차가 많이 난다고는 하지만 그녀도 70대의 할머니다. 어느새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한 노파.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 쌓인 피로와 절망이 질펀하게 쏟아져 늪이 되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성서의 말씀을 아프게 떠올리는데 정 노인의 기침 소리와 가쁜 숨소리에 늪이 다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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