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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22. 2023

박 할머니의 일과

  박할머니는 92세다. 작고 예쁘장한 얼굴에 늘 페도라를 쓰고 있는 멋쟁이다. 휠체어에 작은 몸을 푹 묻고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소녀 같다. 그러나 그 휠체어가 가까이 오면 사무실은 한동안 소란해진다.


  “우리 오빠에게 전화 좀 해줘.”

  “통화가 안 돼요. 그리고 아드님 엊그제 다녀가셨잖아요.”

  “이게 우리 오빠 전화번호야. 빨리 전화해 보라니까.” 

 

  비슷한 대화가 반복되지만 어쩔 수 없다. 젊은 복지사가 다이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대 드리면 잠시 후 기계음이 들린다.


  “연결이 되지 않아 ….”

  “이 여자 누구야? 우리 오빠한테 전화하라니까.”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실랑이를 한다. 복지사는 작은아들, 며느리 아는 번호를 다 누르며 전화기를 대 드리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다.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당장 집에 가겠다며 화를 낸다. 휠체어 바퀴가 벽에 턱턱 부딪친다.


  어쩌다 용케 전화 연결이 되는 날이 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면 할머니의 얼굴이 벚꽃처럼 피어난다. 로마의 휴일에서 헵번도 저런 모자를 썼던가 싶도록 환하다. 주름진 얼굴과 깡마른 몸이 풀어지며 날 선 기다림이 아지랑이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다. 그러나 통화는 1분을 넘기지 못한다. 어쩔 때는 30여 초. 통화내용도 늘 비슷하고 마지막은 늘 같다.


  “지금 바쁘다고? 며칠 있다 온다고? 알았어.”


  그 짧은 통화로 할머니의 중요한 일과 하나가 마무리되고 사무실은 최소한 한나절은 평화롭다. 한시름 놓은 복지사들이 입맛을 다신다. 요양원 전화번호가 뜨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일과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침대시트를 벗겨 이불 보자기에 싸는 일이다. 


  요양원에 출근한 한 첫날이었다. 생활실을 순회하는데 시트가 벗겨진 침대 위에 박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옆에는 커다란 보퉁이가 있었다. 퇴원할 분이냐고 담당 요양보호사에게 물어보았다더니 눈을 꿈쩍꿈쩍하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저 어르신 늘 그래요. 조금 있다가 다시 정리해 놓을게요. 그래도 소용은 없지만….”


  그녀의 말대로 박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침대 시트와 이불을 걷어 보자기에 쌌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꽁꽁 묶은 매듭은 쉽사리 풀리지도 않았다. 


  “우리 오마니가 준 이불이야. 분홍색 내 이불이란 말이야.”

  “그런데 우리 오라바니는 왜 안 오지?”


  식사시간이나 프로그램 시간에 요양보호사들이 다시 풀어놓지만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싸고 풀고 할 뿐이다.


  가끔 사탕을 쥐어드리며 시트를 깔자고 달래 보지만 오목해진 입술에 사탕을 밀어 넣으면서도 보퉁이를 놓지는 않았다. 보퉁이 곁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오라바니”를 찾기도 했다. 작은 몸을 더 웅크리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나운 박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띄엄띄엄하는 이야기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피난, 이불, 오라바니, 오마니 정도였다. 앞뒤로 꿰맞춰보면 1‧4 후퇴 때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급한 피난길에도 분홍색 꽃무늬 이불을 챙겨준 어머니, 그리고 그 이불보따리를 짊어지고 가다가 헤어진 젊은 남자. 그 남자가 오빠인지 남편인지는 아무리 들어봐도 헷갈리기만 했다. 그 헷갈리는 기억 속에서 오라바니를 기다리는 할머니는 아직도 피난 중이다. 


  할머니의 또 하나 중요한 일과는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다. 모두 늙어서 예쁘지도 않고 무식한 노인들이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빠가 오지 않아 부리는 심술이라는 것을 요양보호사들은 알고 있었다. 


  그날도 옆에 앉은 정할머니와 싸우다 말리는 요양보호사에게 험한 욕을 뱉고 있을 때였다. 말쑥한 양복을 입은 초로의 남자가 왔다.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우리 오빠 왔다.”


  방금까지도 짜증과 심술이 더께 졌던 사나운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우아한 노부인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모자를 고쳐 쓰고 있었다. 남자는 가볍게 인사한 후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뚝뚝했다. 그는 보퉁이를 휙 풀더니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따리 그만 싸세요.”


  눈치 빠른 요양보호사가 얼른 시트를 깔고 이불을 펴도 할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그저 곰살궂은 손길로 아들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도 쓰다듬곤 했다. 왜 오지 않았느냐며 투정하기도 했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눈은 금방 발을 비비며 울 것 같은 일곱 살 아이였다. 꼭 다문 입에는 가지 마라는 절규가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나 따라나서지 못하는 할머니.


  사무실 문 앞에 또 휠체어가 멎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종잇조각이 들려있다. 


  “우리 오빠에게 ….”


  마침 문 앞에 섰던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이불 가지고 오신다는 오빠는 언제 오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건 우리 오라바니야. 이게 우리 오빠란 말이야. 그것도 몰라, 바보같이.”


  너무나 또렷한 구별에 오히려 내가 멍해졌다. 엉클어진 것은 기억의 어느 대목일까.


  내가 먼저 번호를 꾹꾹 눌렀다. 긴 신호음, 그리고 이어지는 기계음. 연결되지 않는 오빠는 돌아오지 않는 오라바니보다 더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페도라 아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얄팍해진 입술이 한일자로 다물어졌다. 또 누구와 싸우게 될까? 그런 날은 차라리 내가 이불보퉁이를 싸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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