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묻혀 문지른다. 하얀 행주가 검어진다. 몇 번을 더 문지르자 행주는 까맣게 변한 대신 은수저가 보얀 얼굴을 드러낸다. 정갈한 행주로 은수저를 닦던 할머니 얼굴이 비치는 것 같다.
“은수제는 독을 알아내는 귀물貴物이어야. 그래서 상감님은 은수제를 쓰셨지야. 혹시라도 느그들 입에 못된 것 들어갈라고 하믄 이 은수제가 먼저 알아불 것이어야.”
잔잔한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은수저는 손잡이에 앙증맞은 꽃무늬가 새겨있었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나의 유년은 유복했다. 보릿고개가 높고 험하던 시절이라 끼니 걱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자 소리를 듣던 때였다. 그때 식구들의 수저가 모두 은이었다. 조선 시대를 양반가 아씨 마님으로 살았고 궁중음식에도 조예가 깊었던 할머니 덕분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린 내게는 은수저가 독을 감지하는 묘용이 있다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칠보 꽃무늬가 예뻤고 할머니의 손에서 보얗게 닦이는 것이 신기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집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식모 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취직하셨고 살림은 할머니 몫이 되었다. 하얗던 밥그릇에 보리의 검은 줄이 가득해지고 눈에 띄게 줄어든 반찬. 그래도 두레 밥상에 놓인 수저들은 변함이 없었다. 지난날 안온하고 풍요롭던 기억처럼 보얀 얼굴을 하고.
학교에서 놀다가 늦게 돌아온 어느 날 저녁, 밥상 위에 놋수저가 놓여있었다. 은수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의 얼굴이 몹시 하얗게 보였다.
“시상에 어짜믄 이라고 몰강시럽게 은숟구락만 쏙 빼가부렀으끄나. 내 새끼들 입에 넣든 숟구락을….”
할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가 찬장에 들어있던 은수저를 모두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우리 부엌을 맘대로 드나들 만한 사람 중에 의심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우리 집에서 나가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지만, 도둑질하는 것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경찰들이 발 벗고 나섰으리라는 안타까움을 뒤로 증거 없는 절도사건은 흐지부지 지나버렸다. 은수저가 없어진 것은 그리 아깝지 않았지만 “도둑은 앞으로 잡아야제 뒤로는 못 잡는 법이지야.”하시며 탄식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슬펐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은수저가 사라졌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독한지 미처 짐작도 못 하던 열세 살, 참 고달프고 버거웠던 내 젊음을 예고하는 것이었을까.
어느 때부턴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사람 사이에 금긋기를 했다. 수저가 새삼스럽게 사람의 신분을 가르는 말이 되었다. 난 갈 데 없는 흙수저였다.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진 못했지만 돌아보면 늘 그리운 유년. 은수저를 닦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고 도둑맞은 예쁜 내 은수저도 생각났다. 은수저가 빙 둘러 놓였던 두레 밥상을 떠올리며 반드시 내 은수저를 다시 사고 말리라 다짐하는 것은 나만의 작은 사치였다.
결혼 후, 처음 은수저를 장만한 날.
“은수저라 기분이 좋긴 좋구만.”
좋아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수저 한 벌이 그의 앞길에 깔린 레드카펫이기라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은수저를 도둑맞고 애타 하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수저 몇 벌 도둑맞은 것을 왜 그리 마음 아파하셨는지 그때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식구 수대로 열 벌이 넘는 은수저는 내다 팔면 어려워진 살림에 제법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내 지키고 싶었던 할머니. 당신에게 은수저는 그저 밥 먹는 도구만은 아니었으리라. 어쩌면 영험한 부적과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도둑맞은 것은 수저 몇 벌이 아니라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자존심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가족 모두 은수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내 추억의 재현만은 아니다. 갓 돌을 지낸 손주들까지 은수저를 사준 날, 할머니가 왜 그리 보고 싶었던지
.
그러나 은수저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방세제로 쓱쓱 닦기만 해도 되는 스테인리스 수저와 달리 사나흘만 두어도 누르스름하게 변하는 은수저는 여간 귀찮은 물건이 아니다. 직장 일에 정신이 없고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어느 날엔 은수저가 유물처럼 변해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날마다 보얀 은수저를 식탁에 올리셨을까.
더구나 요즘은 어쩐지 은수저가 더 빨리 변색하는 것 같다. 그걸 닦을 때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공기는 미세먼지로 오염되어있지, 수돗물도 믿을만한 것이 못 된 지 오래고, 먹거리로 장난을 치는 양심 없는 상혼 때문에 가공된 음식 하나 맘 놓고 먹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니 닦아놓아도 다시 독 속에 담그는 것과 같고, 은수저는 날마다 “독이야!”라고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독 속에서 사는 때문일까. 사람들도 갈수록 독해지는 것 같다. 부모를 학대하고 살해까지 하는 패륜에 오싹해진다. 제가 낳은 핏덩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어미 이야기에는 숨이 턱 멎을 것 같다. 모성은 사람, 아니 생명체가 지닌 마지막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 최후의 보루까지 무너지는 세상이다.
요즘은 이런 세상을 구제하고 나라를 짊어질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로 시끄럽다. 그런데 그들에게서는 새어 나는 냄새만으로도 독가스에 중독된 듯 현기증이 인다. 그러니 속에는 얼마나 독하고 추한 것들이 쌓여있을까. 그들에게 은수저를 대보고 싶어진다. 순식간에 까맣게 변하지나 않을는지.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 할 손주들을 생각하니 은수저를 닦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기도하듯 은수저를 닦으시던 할머니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고 뽀드득 소리가 나직한 목소리가 된다.
“혹시라도 느그들 입에 못된 것 들어갈라고 하믄 이 은수제가 먼저 알아불 것이어야.”
할머니처럼 깨끗한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낸다. 은수저가 보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