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寸의 거리

by 김이경

골절이라니, 다리뼈가 부러져 깁스를 했다니. 온몸에 솜털까지 쭈뼛거리고 뼈마디에 균열이 가는 것 같은 전율이 일었다.


체중 겨우 1.9kg. 있어야 할 신체 부분이 다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작은 아이. 태어난 지 3일이 지났지만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미처 얼굴도 대면하지 못한 손녀다. 그 어린것이 어떻게…. 난 “어떻게, 어떻게 그런…”을 고장 난 LP판처럼 반복하고 며느리는 눈물만 그렁그렁했다.


아이는 시험관 쌍둥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둘째 아들이 시험관을 통해 아이를 얻는 과정은 고행이었다. 신의 뜻에 없던 아이를 달라고 조르는 셈이니 쉬운 일일 수 없다. 며느리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매달렸지만 조물주는 단번에 뜻을 돌리시지 않았다. 실패. 호르몬 조절이 불안정한 며느리는 면도날 위에 선 듯 위태했다. 누가 말만 건네도 주르륵 눈물샘이 터지는 바람에 전화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세 번째 시술 끝에 확진을 받기까지 전화벨 소리마다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려야만 했다. 쌍둥이란 확진을 받았을 때 손끝을 따라 명치에서 내려가던 묵직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뭔지도 모르는 검은 선과 흰 선이 물결 진 초음파 사진, 그게 아기라고 했다. 그걸 바라보며 며느리의 눈빛이 수줍게 떨고 있었다. 온몸을 긴장시키던 날카로움은 찾을 수 없었다. 의술이 발달한 세상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일곱 번을 시술하고도 신의 뜻을 돌리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데 세 번에 뜻을 돌려주신 하나님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다고 꽃이 금방 쉽게 피는 것은 아니었다. 살얼음판을 건너고 꽃샘추위도 견뎌야 꽃은 핀다. 며느리는 입덧으로 반쪽이 되었다. 앙상해진 광대뼈가 안쓰러웠다. 내가 입덧할 때는 서너 달 물도 못 넘겼지만 입덧이 끝나고는 무엇이든 없어서 못 먹었다. 그 기억을 되살리며 이제나저제나 먹고 싶다는 것이 생기길 기다렸다. 뭐든 먹겠다고만 하면 다 해주고 싶었다. 아들은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사러 밤중에 나가는 남자가 부럽다고 했다. 그러나 태아들의 체중 때문에 가끔 링거를 맞으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했다.


만삭이 되어가도 그치지 않던 입덧은 성급한 아이들이 40여 일이나 먼저 세상 구경을 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체중 고작 2kg, 1.9kg으로 태어난 두 아이. 얼굴은 골프공만 하고 몸은 작은 생수병만 하다고 했다. 그중 작은 아이 허벅지가 골절되었다는 것을 3일 만에 발견했다. 아기를 만진 건 의사와 간호사뿐이었다. 아기는 산부인과를 떠나 대학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다리라야 제 아비 손가락만 하다는데 거기에 깁스를 한 사진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얼마나 아플까. 말도 못 하고….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미안했다.


일손도 잡히지 않고 심란하기만 했다. 괜히 허둥대다 동생에게 전화했다. 놀란 동생은 뭔가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린 것 같았다. 본시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금방 울먹거렸다. 그 작은 아이가 골절되었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든다고 했다. 그런다고 걱정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료사고가 분명한데 병원에다 어떤 조치를 했느냐고 물었다. 경황이 없기는 했지만 놀라고 걱정하고 울먹인 것 말고 뭘 했던가. 동생이 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소름이 끼치는데 그런 일 당하고도 가만있어요? 다 헛똑똑이들이라니까요.”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왕절개로 분만시키는 의사가 아기 다리를 부러뜨렸으니, 의료사고가 맞았다. 그로 인해 생기는 일들은 당연히 병원에서 책임져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 한번 못 해봤으니 헛똑똑이 맞았다. 얼마나 칠칠치 못한 의사면 아기를 꺼내면서 다리를 부러뜨릴까, 새삼스럽게 분통이 터졌다.


아이의 사고를 들은 지인들은 한결같이 놀라면서 분개했다. 당장 병원비도 문제지만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그에 대해 뭔가 병원 측과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냥 놀란 가슴만 부여안은 내게는 미치지 못했던 생각들이었다. 역시 객관적인 사람들이 현명했다. 아들에게도 그런 말을 전해주고 뭔가 조치를 하는 것이 좋지 않냐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아비가 어련히 알아서 하랴 싶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며느리가 퇴원할 때 벌어졌다. 산후조리원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산부인과와 연계된 조리원을 예약해 놓았는데 그게 다 허사가 된 것이다. 조리원 규칙상 외부 병원에 있던 아기를 조리원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아기를 밖에 두고 산모가 조리원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열불이 터질 것 같았다. 누가 저지른 잘못인데 원칙 타령을 하다니.


며느리가 한 아기를 데리고 퇴원하고 이틀 후 골절된 아기도 퇴원했다. 진짜 고생이 시작되었다. 며칠 동안이지만 조리원에서 몸을 추스를 기회조차 잃어버린 며느리가 안쓰럽고 가느다란 다리에 깁스한 아기는 똑바로 바라보기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아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자식이 그런 꼴을 당하고 어미는 어미대로 몸조리도 못 하는데 그대로 둘 거냐며 역정을 냈다. 아들은 제 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 입에 아이 이름 오르내릴 거잖아요. 뭐 좋은 일이라고.”


병원비는 아비가 조금 더 고생하면 되고, 어미도 힘껏 버티겠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입쌀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둘이서 결정했단다. 난 그만 말문이 막혔다. 내겐 얼마나 애틋하고 귀한 손녀인가. 그러나 마흔도 중반을 넘긴 다음에 아이를 얻은 그 아비만 했을까. 온몸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품어온 그 어미만 했을까.


아이의 성장 후를 거론하며 의료사고를 들먹이던 사람들도 분명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내 마음은 또 얼마나 짠하고 안쓰러웠던가. 그러나 그 어미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아니, 돌이켜보면 내 분이 앞장섰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제 딸을 지그시 바라보는 아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냥 무탈하게 낫기만을,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고 곱게 자라기만을. 그런다고 그 아비의 눈길만큼 절실하랴.


할미와는 2촌이고 부모와는 1촌이라더니 그것이 한 마디寸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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