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소리

by 김이경

아침 일찍 부고를 받았다. 백여 리의 거리를 하루가 멀다고 찾아뵈며 노심초사하던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노환이었다. 연세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슬프다. 시경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평생을 두고 외롭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평생을 두고 슬프다고 했다. 나도 95세의 어머니를 보내드리며 “세상에 호상(好喪)은 없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미 잃은 슬픔이, 가슴 가득한 눈물이 손끝에 스미는 것 같았다. 그 슬픔을 같이하자고 작은 정성과 위로를 보냈다. 코로나시대의 문상이다.


아침은 늘 바쁘다. 잡다한 집안일로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이○○ 교장이 간밤에 죽었대요, 심장마비로.”

그 목소리는 정지 버튼이 되었다. 멈춰버린 시간과 공간 어느 틈에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그는 내가 교장일 때 같이 근무했던 젊은 선생님이다. 승진을 위해 애면글면하면서도 유난히 웃음소리가 호탕했던 사람. 몇 해 전 승진했지만 아직은 50대 후반, 요즘 나이로는 청춘이다. 마지막 통화 때도 그는 커다란 웃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 그가 밤사이 갔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가슴께를 지나간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 목숨에 어찌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랴. 그러나 두 부고의 무게는 같지 않았다. 첫 부고는 슬펐다. 두 번째 부고는 아팠다.


나는 사람이 태어날 때 제 몫의 시간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삶이다. 삶은 시간이다. 더러는 천천히 더러는 격렬하게 제 시간을 비우다가 몸 안에 담겨있던 시간을 모두 비우고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제 시간을 다 비우고 가는 것일까. 느닷없는 광풍에, 때론 하릴없는 손짓에 모가지 뚝 떨어지는 꽃은 얼마나 많은지. 목숨의 무게는 시간의 무게이고 부고의 무게는 못다 비운 시간의 무게는 아닐까.


두 사람이 가진 시간을 모두 비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겉모양을 보고 시간을 짐작하는 것일 뿐. 비록 돌연사지만 어쩌면 그가 받은 시간이 꼭 그만큼 뿐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은 제 시간을 다 비우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슴에 자꾸만 찬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그의 남은 시간이 서성이며 방황할 것만 같았다.


환갑을 넘기면서 생긴 입버릇이 있다.

“이제는 어떤 사유로 죽어도 자연사야.”


죽음에 초연한 듯,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듯, 남편에게도 동생에게도 심지어 아들들에게까지도 천연덕스럽게 말하곤 한다.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들처럼 초연해지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 앞에 다가온 죽음에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라고나 할까. 그런데 부고 한 통에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연사라고? 나보다 고작 열댓 살 젊은 사람의 죽음에 흔들리는 마음이 내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내 모습이 염려되어, 정말 그럴 자신이 없어 미리 입버릇으로 속내를 감췄던 것은 아니었을까. 죽음 앞에서 질척일지도 모를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거실에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홈 매니저 모니터에 알람이 들어오고 이어서 도어록 소리도 들린다. 현관이 소란해진다. 둘째네가 온 것이다. 어미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 쌍둥이 어느 녀석이 벨을 눌렀겠지. 나는 미리 팔부터 벌린다. 문소리가 나고 자박거리는 발소리, 혀 짧은 소리가 들린다.


“함미니!” 그때부터 발자국이 통통거리는 자리마다 팝콘이 튀듯 꽃이 피어난다. 까르르 웃음소리, 발음이 덜 익은 말소리. 통통거리다 뒹구는 소리, 갑자기 둘이서 다투고 칭얼대다 이내 다시 웃는 소리는 폭죽이 터지듯 꽃이 피어나는 소리다. 거실의 한파주의보가 화들짝 놀란다.


신이 망설이는 것을 억지로 보채서 받아낸 쌍둥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작은 생명. 세 살배기 쌍둥이는 거실에서 방으로 서재로 돌아다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을 집었나 보다. 끝을 잡고 통통거리는 걸음 따라 흰 파도가 출렁인다. 파도를 붙들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말릴 생각도 못하고 같이 웃는다. 이 아이들이 세상의 파도를 어찌 알랴. 풀려버린 두루마리를 휘저으니 파도는 하얀 꽃잎이 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피는 곳마다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것 같다. 한파로 얼어붙던 거실이 꽃밭이 된다. 한겨울이던 우리 집에 봄이 내려온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찢어진 화장지를 쓸어 모았다. 꽃잎을 쓸어 모으는 것 같았다. 내 아이들이 걸어갈 시간 동안 꽃은 얼마나 피고, 파도는 얼마나 칠까. 부디 모진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파도도 꽃이 되기를….


미처 향기가 가시지 않은 꽃도 지는 것이다. 그러나 꽃은 이어서 핀다. 꽃은 져도 새로운 꽃은 피어난다. 아직 남아있는 거실 가득한 꽃피는 소리. 눈꽃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주우며 나는 정말 “어떤 죽음도 자연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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