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갑에서 상품권 두 장을 꺼냈다. 넣어두고 잊었던 것일까? 푼돈도 아니고 상품권이, 그것도 두 장이라니. 그러나 액면을 보고 실망했다. 십만 원은커녕 오만 원도 아닌 만 원권 두 장. 별 볼 일 없다는 듯 슬쩍 밀쳤지만 그는 그걸 들고 벙글거렸다.
“이거, 있잖아. 그때 코스모스축제 때 상금으로 받은 거야.”
그러고 보니 2년쯤 전인가 우연히 코스모스축제장을 지나다가 노래자랑대회에 참가하고 상품권을 받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걸 여태 뒀어요? 마트에서 쓰면 되겠구먼.”
“이걸 왜 써? 나 죽을 때까지 간직할 건데. 이거 상으로 받은 거라구. 노래자랑 상!”
정색하는 그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어떻게 난장의 무대에 올라섰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노래자랑이니까 오히려 믿어야 할까.
그는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체질적으로 술도 못 마신다. 술 마신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는다. 술을 못 마셔도 취한 사람들 속에서 적당히 분위기 맞춰주는 사람도 있더구먼…. 흔한 유머에도 두리번거리고 가끔은 유머에 정색하고 대꾸하기도 한다. 어쩌다 유머라고 하는 말은 고조선 시대에나 했음 직한 말이다. 시쳇말로 꼰대다.
그의 낯선 모습을 처음 본 곳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저 집에서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노래방이 생기기 전엔 어디서 목청 높여 노래 부를 일이 없었다. 술집 근처에도 안 가는 그는 더욱 그랬다. 골목마다 노래방이 생기고 난 뒤, 모처럼 지인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였다. 그 답지 않게 목소리가 커지고 남이 잡은 마이크를 뺏으려는 모습이 어찌나 낯설었던지. 그렇지만 그는 혼자 실컷 분위기만 잡지 노래방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교과서에서 걸어 나온 음정이고 박자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 조금 무시하고 기분 따라 목청껏 소리도 질러보고 자기감정에 겨워 보는 것이 노래방 아니던가. 남들과 따로 노는 음악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큰소리로 웃고 즐거워하며 100점이라도 터질라치면 어깨춤까지 췄다. 평상시라면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품권과 그를 번갈아 보며 온 나라를 달구는 트로트 무대를 생각했다. 요즘 안방극장은 트로트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연을 통해 별이 된 사람들이 번쩍이는 조명 아래 눈이 부신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의 노래 한 소절, 말 한마디에 심취한다. 과하다 싶은 열풍이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별들은 처음부터 별이 아니었다. 진흙에 묻혀 한 발을 떼기도 버거웠던 고단한 날들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혼자서 서럽게 노래 불러야 했던 이야기,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 불러야 하는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 길가에서 사람들의 귀를 훔치기 위해 노래를 팔아야 했던 이야기들.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들이 살아온 날의 이야기 같아서 더 애잔하고, 그래서 나도 따라 박수하지 않았던가.
지난날 고달팠던 삶의 이야기가 지금 그들을 더 빛나게 해 준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빛나는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오고 견뎌온 그날들에 보내는 박수가 아닐까. 또한 그 화려한 별빛 아래 재수 삼수를 하며 ‘한 번만’을 노리고 지금도 허덕이는 수많은 시시포스들, 그들에게도 보내는 격려가 아닐까. 그들의 이야기는 날마다 삶에 지친 ‘수많은 우리’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수많은 우리’가 함께 누리고 싶은 영광이리라.
혹시 남편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혼 전 남편이 기타를 잘 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무슨 까닭인지 즐기던 기타를 스스로 부러뜨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말이 나오면 금세 화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나를 만나기 전 있었던 일이고 꺼내기 싫어하는 일이라 굳이 물을 수도 없었다.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집요하게 물어보지 않은 것이 내 무관심이 아니었을까. 70년대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그런 지난 이야기를 시시콜콜 캐기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더 벅찼다면 너무 궁색한 변명일까. 내가 워낙 노래를 못하고 노래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으로도 쉽게 변명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만일 우리 젊었을 때 지금처럼 전국을 달구는 오디션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그도 예선전부터 아등바등 계단을 밟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의 실력으로 봐서 분명 두어 계단은 올랐지 싶다. 칭찬받는 교과서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파름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TV에 비치는 일은 없었을지도…. 그래도 예선전에서 들었던 몇 마디 칭찬을 훈장처럼 간직하고 살았을 것만 같다.
고작 만 원짜리 상품권 두 장을 보물처럼 지갑에 챙겨 넣는 그의 귀밑이 내 기분 탓인지 발그레해 보였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는 말 같은 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의 꿈이 이제야 엿보이는 것 같았다. 상품권 두 장이 한 번도 드러내 본 적 없었던 그의 꿈을 지키는 꿈 지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부러진 기타의 사연을 물어본다면 그는 대답해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