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풍월 읊기

by 김이경

정월대보름은 잊혀가는 명절이다. 아이들은 설에 다녀갔고 휴일도 아니라 늘 둘이서만 쇴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아이들 가까이 이사를 하고 보니 갓 쪄낸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 아홉 식구가 함께 모일 수 없어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불렀다. 코로나가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이다.


미리 불리고 삶아둔 찹쌀과 팥, 묵나물들을 늘어놓고 시루를 씻다가 문득 손자에게 시루에 밥 찌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룻번 붙이는 것부터 보여주려면 좀 일찍 와야 하는데 자칫 며느리 일 시키려는 모양새가 될 성싶었다. 애벌 찌고 좀 기다리면 두벌 찌는 것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에밥도 한 움큼 뭉쳐줄 수 있겠지. 난 오곡밥보다 꼬들꼬들하면서도 쫀득한 찰밥을 좋아한다. 전기밥솥으로도 지을 수 있지만, 굳이 번거롭게 시루를 꺼내는 것은 지에밥을 뭉쳐 호호 불며 먹던 그 시간을 소환하는 의식인지도 모른다.


나물은 가짓수를 홀수로 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홀수로 나물을 만든다. 미신이 아니라 문화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명절이나 세시풍속이 다 문화가 아닌가. 올해는 어쩌다 보니 일곱 가지다. 내년엔 아홉 가지를 해야지. 내가 볶은 나물은 누구에게나 맛있다는 말을 듣는다. 할머니가 들으면 웃으실 일이지만.


아이들은 찹쌀이 다 익기 전에 왔다. 아이들 보는 데서 지에밥을 함지에 펐다. 탱글탱글하게 삶아진 팥을 넣고, 팥물을 주며 섞었다. 손자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뜨거운 지에밥 한 움큼으로 주먹밥 만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느리도 팥물 간을 보고 팥도 깨물어 보는 것이 저도 해볼 요량인 것 같아 쌀 담그는 것부터 설명해 주었다. 팥이 고루 섞이고 발그레한 팥물이 들자 다시 시루에 담고 김을 올렸다.


찰밥과 나물만으로도 상이 그득했다. 열나흗날 저녁에 동네 아이들과 밥 얻으러 다니던 이야기, 뒷동산에서 횃불 돌리던 이야기도 반찬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그러면 당장 신고가 들어갈 거라며 웃는데 열네 살 손자는 전설을 듣는 표정이었다.


저녁엔 둘째네가 왔다. 네 살 된 쌍둥이가 뜻밖에 찰밥을 잘 먹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신기함이라니. 문득 내가 저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보름 밥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제 엄마 더 늙으면 니가 해야지?”

명절이면 제법 야무지게 음식을 해내는 아이라 당연히 “예”라고 할 줄 알았다.

“나물은 할 수 있는데 밥 찌는 건 안 봐서…. 어머님처럼 음식 잘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하긴 늘 혼자 했으니 그럴 수도…, 그런데 나처럼 잘하는 사람이라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헛웃음을 치실 것 같았다.


어렸을 적, 난 부엌일이 싫었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부엌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숙제다, 시험이다, 핑계를 대거나 책을 들고 부엌일을 요리조리 피했다.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셨지만, 한식의 명인이라 할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께 칭찬 들을 만큼 음식 솜씨가 좋은 언니, 착하고 순한 동생까지 있어 내가 슬그머니 빠져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 언니가 투덜거리면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쟈는 외려 방해만 돼야. 저 선머스마가 시집 가믄 살림을 어찌케 하고 사끄나.”


그것은 어머니의 걱정이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에 언니도 동생도 없던 날, 할머니가 내게 콩나물을 씻으라고 하셨다. 씻어도 콩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하나씩 벗겨야 했다. 옷 앞섶을 다 적시고 돌아서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가, 콩나물 몇 개든?”

할머니는 한참을 웃으시다 콩나물 씻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바구니에 담아 적당히 까불면 콩 껍질 대부분이 바구니에 달라붙는다고. 신기했다. 그래도 나와 부엌은 가까워지지 못했다.


결혼이 날 어쩔 수 없이 부엌에 서게 했다. 밥쌀도 씻어본 적 없던 내가 무슨 재주로 밥상을 차렸던지, 어떻게 김치를 담갔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부엌에 서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어깨너머로 보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스쳐 가곤 했다. 지나치듯 일러주시던 말씀이 느닷없이 생각나기도 했다.


“찬바람 나믄 고춧가루만 써야제 물고추 갈아 담으믄 미끄러야.”

늦여름 김치를 담글 때면 영락없이 그 말씀이 귓가에 들렸다.


“보리누름에 붕어찜은 별미지야.”

“7월 민어는 보약이제.”

“가을 광어는 기어간 뻘도 맛있어야.”


양식 생선에 제철을 잊고 살다가도 문득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 제철 생선을 찾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부엌에 서면 ‘할머니는 이렇게 하셨지. 그래, 이런 맛이 났어.’ 하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 흉내 내기에 바빴던 오십여 년. 이젠 가끔 음식을 맛있게 한다는 말도 듣는다. 언니는 동네잔치나 친목회 나들이면 제일 바쁜 사람이고, 동생은 한정식집 차려도 되겠다는 말을 듣는데, 나도 그때 조금만 부엌을 기웃거렸더라면….

늘 아쉬운 마음에 새록새록 생각나는 할머니 말씀을 큰며느리에게 했던 대로 둘째 며느리에게 또 했다.


“찹쌀은 담근 물을 여러 번 갈아주고, 팥은 초벌 삶은 물은 버려야 아린 맛이 빠진단다. 팥을 삶을 때는….”


‘堂狗 三年 吟風月’이라 했는데 나는 할머니 곁에서 이십 년 넘게 산 서당 개 아닌가. 그렇게 풍월을 읊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고 한다. 대보름은 몰라도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열성으로 챙기는 젊은이들. 우리 세대가 끝나면 이런 풍월이나마 읊어줄 사람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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