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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Oct 04. 2024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잔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꼈다. 껄떡껄떡 숨넘어갈 듯 호흡이 가빠져도 늘어놓던 이야기들마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날렵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움직이는 두 개의 다리는 이미 뇌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그저 움직일 뿐이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에게 내려진 기다란 동아줄처럼 단단하게 쥐어진 스틱에 온몸을 맡겼다.


덥다, 덥다. 해도 이렇게까지 더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웠던 지난 여름이다. 상대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편이었고, 심지어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편이라 자부하는 삶을 살던 나였다. 오만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은 온몸에서 터져 나와 허벅지에서마저 주르륵 흘러내렸다. 티셔츠가 등에 달라붙는 건 당연했고, 입 밖으로 나갔다 되돌아오는 산소마저 무겁고 습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에어컨 앞에, 선풍기 앞에 머무를 뿐이었다. 인위적인 바람에 두통이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이 공간을 벗어나면 육체라는 것은 그저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았으니까.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게 변하는 거라고 하더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이 도도하던 꼬리를 살포시 내렸다. 온 힘을 다해 눌려있던 숨통이 트였다. 가을이다.



여름의 햇살이 채 떠나지 않는 문가에 가을이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기분 좋은 서늘함을 뿜어내며 당장 나오라 재촉했다. 홈쇼핑 광고에 마감 시간 5분 전이라는 문구처럼 올해는 금세 사라질 거라고,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라고 속삭인다.

못 이기는 척 슬쩍 신발에 발을 밀어 넣었다.


봄의 초록색을 좋아한다. 추운 겨울 꽁꽁 얼어있던 것들이 수줍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초록색은 여름의 선명한 것에 비해 투명하고 연약하다. 빛이 반짝이면 제 몸에 그것을 통과시키며 가녀리게 흔들거리며 시작을 알린다.

봄의 초록색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여름의 초록색은 사람의 20대와 비슷한 것 같다. 강하고, 뜨겁고, 열정적이다. 태풍이 온몸을 흔들어대도 여린 손끝에 힘을 줘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힘껏 제 몸을 키워내는 그것은 청춘과 닮았다.

가을의 초록은 색이 있다. 초록이 아니면 품어주지 않을 것 같던 올곧은 몸이 유연해지며 다른 색으로 물든다. 사실 나의 색은 노랗거나 빨간 색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다른 선택지마저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나의 아이가 말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바람이 안 불면 멈춰있다고. 나무는 약하다고. 하지만 초록의 끝은 흔들리지 않는다. 초록 나무의 뿌리는 단단한 땅에 깊게 뿌리를 박고 연약한 초록도, 강한 초록도, 색이 변하고 있는 초록마저 보듬어준다. 초록이 더 이상 초록이 되지 않아 떨어져 나가는 날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초록이 다시 돋아날 그날을 기다리며. 마치, 우리 부모님들과 같은 그런 우직함이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갔다. 성질이 급해 벌써 떨어진 초록을 밟으면 아직 바스락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바늘을 세운 밤송이는 부지런한 누군가 이미 속을 비워놓은 상태다. 수확의 기쁨을 누렸을 그 덕분에 다람쥐는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하겠지만 그마저 부러움이다.

파랗게 물든 하늘은 손바닥을 아무리 올려도 닿지 않는다. 오히려 약 올리기라도 하듯 거리를 벌린다. 네까짓 게 아무리 달려온다 한들, 아무리 더 올라온다 한들 나에게 닿을 수 있겠냐는 듯 한 걸음 다가서면 저만치 달아난다. 정상에 서서 아무리 손을 올려도 더 이상 닿지 않는다. 온 세상이, 이 거대한 산이 내 발밑에 있어도 하늘은 그저 내려다볼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올라갈 때보다 무거워진 다리는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기고, 기운이 빠진 그것이 돌부리에 걸려 엉덩이가 세게 부딪혀도. 그 자리에 밤송이가 있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넘어진 내게 걱정스러운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음에 행복하다. 각종 스마트한 기계에서 터져 나오는 기계음이 아닌 서로의 호흡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간임에 풍족하다.

후들거리는 관절을 느끼며 세월을 가늠해 본다. 나도 어렸을 때는 뛰어서 내려갔던 것 같은데, 라며 지나가는 젊음을 바라본다.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년을 느낀다. 나뭇잎이 모여 나뭇가지 되고, 그것이 모여 푸른 나무를 만들어내듯, 거대한 산에 손톱만 한 우리들이 모여 공간을 채웠다. 깊게 숨을 들이켜며 그것들을 내 안에도 채운다.



"도토리묵에 막걸리 하나 주세요."

그래, 널 위해 지금껏 걸었다. 가득 채워진 공간의 비좁은 틈을 파고들며 남은 공간을 채워준다. 오늘도 수고했어, 달큰함으로 가득 채운 잔이 넘치도록 부딪히며 남은 초록을 눈에 담아본다. 긴장했던 신경들이 잠시 쉼표를 찍는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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