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5월의 어느 날, 친한 친구의 메신저 프로필에 핑크색 톤의 너무나도 어여쁜 꽃 케이크 사진이 올려져 있었어요.
위에는 영어로 이름이 쓰여있고 아래에는 80세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내용 같았죠.
마침 친정엄마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아 궁금한 마음을 가득 품고 친구에게 톡을 보냈어요.
"소은아~ 너 프로필 사진에 있는 꽃 케이크 너희 어머니 생신 때 선물해 드린 거야?"
"어, 우리 엄마 얼마 전에 팔순이셔서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주문했거든. 어때 괜찮아?"
"응, 너무 이쁘다. 우리 엄마도 곧 칠순이신데 너 어디서 주문했는지 이름 알려줄 수 있어?"
"물론이지. 내가 인스타그램 링크 보내줄 테니까 거기로 DM(Direct Message) 보내봐."
"응 땡큐~"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서 받은 링크로 들어가 DM을 보냈고 답장은 바로 왔어요. 사장님은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인스타에 다양한 케이크 사진을 올려놨으니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축하 문구를 정해서 답장을 달라고 하셨죠. 보라색을 너무나 좋아하셔서 평소에도 보라 가방, 보라 구두, 보라 옷, 보라 장갑, 심지어 샴푸까지도 보라색 통으로 구입하시는 보라 홀릭인 엄마를 위해 당연히 케이크의 메인 컬러는 보라색을 떠올렸어요. 마침 샘플로 나온 사진에는 진주가 박힌 보라색 케이크 위에 붉은 생화 장미가 장식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선택을 했지요. 축하 문구로는 위에는 70세 생신을 의미하는 70th, 아래에는 엄마의 평소 별명을 영문으로 적어 넣기로 했어요.
사실 꽃 케이크를 주문해 본 경험이 처음인 데다 칠순이라는 큰 행사인데 행여나 제때 만들어지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까 봐 생신 전날까지 마음이 무척 조마조마했어요.
엄마의 칠순 잔칫날 아침, 케이크를 찾으러 갔는데 초행길인 데다 공방이 오피스텔 위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지도를 보고 겨우겨우 찾아갔지요. 여름이라 케이크에 바른 슈가 코팅이 녹을 세라, 꽃이 시들 세라 냉장고 안에서 서늘한 단잠을 자다 나온 꽃 케이크는 실제로 보니 훨씬 더 황홀했어요. 단순히 먹는 용도의 케이크가 아닌, 보라 드레스를 입고 빠알간 왕관을 쓴 한 떨기 우아한 공주 같았죠. 엄마가 받으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코로나가 지금처럼 일상화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던 22년. 많은 어른들을 모시고 큰 잔치를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의 추억이 가장 가득했던 곳으로 식사 예약을 해 가족끼리 조촐하게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지요. 혹시나 왁자지껄 화려하게 잔치를 하지 못해 엄마가 서운해하실까 조금 걱정도 했지만 항상 괜찮다 괜찮다 말씀하시는 배려심 깊으신 엄마는 '그래도 이렇게 위드 코로나로 바뀌어 너희들 얼굴 보면서 밖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엄마께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꽃 케이크의 존재를 너무 일찍 알아채시면 안 되기 때문에 뒤춤으로 숨기고 007 작전을 남몰래 열심히 수행하다가 저희 차례가 되어 테이블 배정이 되고 자리에 앉았을 때 드디어 '짜잔' 하고 엄마께 케이크를 건네 드렸어요. 순간 엄마는 입을 쩍 벌리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어머, 이게 뭐야? 꽃이네?"
"엄마, 생신 진심으로 축하해요. 이거 어때, 맘에 들어?"
"뭐지? 케이크인데 꽃도 있네? 어머어머, 너무 예쁘다. 나 보라색 좋아한다고 보라색 케이크로 한 거야?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술적인 케이크가 다 있다니. 근데 너무너무 예쁘다. 정말 고맙다."
"응, 엄마 생각하면서 내가 직접 골라 주문 제작 맡긴 거야. 엄마가 좋아해 줘서 나도 너무 좋아요."
사진에 담긴 엄마는 지금 다시 봐도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요. 꽃 케이크와 함께 미모는 더욱 빛을 발하고 감동, 행복, 기쁨이 공존했던 그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 제 앞에서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살아있는 꽃은 화병에서, 화분에서, 땅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크림을 짜서 만든 꽃은 종종 봐왔지만 저렇게 큰 생화가 직접 케이크에 올라가는 건 처음 보았고, 생화 고유의 싱그러움이 은은한 케이크에 더해져 바라보는 사람을 더욱 로맨틱한 기분으로 취하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꽃이 구현해 내는 세상은 이렇게도 다양하구나, 플로리스트가 케이크를 만들면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는 거구나, 이것은 음식을 넘어선 예술이구나를 느꼈답니다. 케이크 하나에도 장인 정신을 느끼게 하는 이 예술가가 참 대단해 보였던 하루였습니다.
칠순 파티가 끝나고 엄마는 집 냉장고에 보관된 케이크를 한 조각 한 조각 드실 때마다 저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셨어요. 멋진 케이크가 한 조각씩 사라지는 게 너무너무 아쉬운데 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해서 더욱 안타깝다는 말씀과 함께요. 케이크에 꽂았던 장미들도 화병에서 싱싱하게 잘 있다며 인증 사진도 역시 잊지 않으셨죠.
엄마의 칠순은 파티가 있던 그날 하루로 딱 끝난 게 아니었어요.
케이크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꽃이 다 시들 때까지 1주일 넘도록 계속되는 거였어요.
매일 케이크를 한 조각씩 드시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억에 담고음미하려고 하셨을까요?
매일 꽃의 물을 갈아주시며 얼마나 많이 행복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셨을까요?
케이크의 조각처럼 엄마의 기억 조각에도 70이라는 숫자가, 그 연세가, 그 의미가 참 달콤한 것이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