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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Feb 23. 2024

시누이가 보낸 꽃배달

담백한 사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시누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유명한 속담이죠.


예로부터 시누이는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얄밉고 사나운 이미지였어요. 설령 시어머니는 잔소리나 타박을 하신다 해도 내 남편을 낳아 주신 분이니 이해할 여지가 조금은 있어요.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시누이는 내가 원해서 얻은 관계가 아니라 그냥 남편이랑 결혼해서 연결된 사람일 뿐이잖아요. 드라마에서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다그칠 때 옆에 한소리 거들거나 시어머니에게 황당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올케를 강도 높은 수준으로 괴롭혀요. 이 분함과 스트레스는 오롯이 며느리이자 올케 몫이 되고요.


하지만 속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호소해 봤자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우리 누나(여동생)가 그럴 리가 하아내 말을 믿지 못하거나 그들 말에 별 뜻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태평한 소리만 늘어놓죠. 그런데 며느리들은 모두 공감할 거예요. 우리의 속이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좁지 않잖아요? 아이들 키워내며 업그레이드된 능력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인내심'이 상위권에 있을 텐데,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정말 순수하게 별 뜻 없이 지나가며 하신 말로 상처받을 만큼 그리 나약한 멘탈은 아니다 이 말입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요.






신랑과의 연애 초반에 누이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한 적이 어요.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한 번 보고 싶어 그러셨을까. 부르심을 받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만남의 광장까진 아니지만 만남의 출입문이었던 신촌 현대백화점 정문 앞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누이를 만나기로 했어요.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누나를 보게 되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있는 옷 없는 옷 고르고 골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치장을 하고 나갔답니다.


누이는 키가 만했고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밝고 굉장히 적극적인  같았어요. 저를 보자마자 "안녕, 벨라구나, 반가워."라며  앞으로  걸어오면서 환하게 웃어주시 아니겠어요? 내향적인 는 먼저 말 걸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다가와 주시 벌써 제 마음의 반은 열리게 되었죠.


우리 셋은 근처 파스타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어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긴장해서 다 잊었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누이보고 배우 김원희를 닮았다고 하셨던 거예요. 제가 예쁘다는  웃기다는 건지 정확한 의미는 묻지 못했지만, 제가 김원희를 좋아해서 누이가  괜찮게 생각하시나 보다 제 마음대로 끼워 맞추고는 여자친구로 나 합격한 것 같다고 하하 호호 좋아라 했답니다. 지금이라도 시누이에게 그때 김원희는 무슨 의미였냐고 여쭤보고 싶지만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냐고, 기억 안 난다고 하시면 저 많이 상처받을 것 같아 그냥 입 다물어야겠어요.


그렇게 우리는 남자친구의 누나, 남동생의 여자친구 관계로 지냈어요. 이후 결혼을 하게 되며 졸지에 시누이와 올케라는 신분이 생기게 되었죠. 하지만 9년간의 언니에서 갑자기 형님으로 불러야 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낯간지러워 지금까지 한 번도 형님이라고 불러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시누이는 본인을 형님으로 부르라며 따로 이야기하신 적이 없어요. 시누이는 에게 올케라고 호칭을 바꿔 불러주셨지만 말이에요. 사실 시누이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예절에도 맞는 일일 텐데 시어머니께서도 웬일인지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시지 않았답니다. 사실 형님보다는 언니 언니 부르던 어린 시절의 친근했던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저만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시누이에게 가장 고마운 점이 두 가지 있어요. 

한 가지는 시어머니께서 제게 잔소리 비슷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올케한테 왜 그러냐며 중재를 해주셨던 점이에요. 말리는 시누이가 얄밉다지만 우리 시누이는 말리는 게 너무 멋져 보였지요.

두 번째는 여태껏 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셨다는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호칭 문제에 있어서도 이래라저래라가 없으시저희 집에서 3년간 시부모님 제사를 지낼 때에도 제사 음식과 상차림 등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일절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본인 부모님의 제사를 치르는 일이니까 작은 것이라도 말씀하실  있는 건데 오히려 저에게 제사를 지내줘서 너무 고맙고 수고했다며 댁으로 돌아가실 때 항상 두 손에 돈 봉투를 꼬옥 쥐여 주셨답니다. 시누이는 칭찬과 고마움을 하는 말이 아니라면 절대 상대의 기분이 상할 말은 하시지 않는 분이었어요.






2년 전.

띵동. 초인종이 울리고 황급히 마스크를 하고(코로나 걱정으로) 문을 빼꼼 열어보니 퀵 아저씨가 커다란 꽃다발을 전해주시며 벨라님이 맞냐고 물으셨어.  생일에 맞춰 시누이가 보내신 선물이었죠. 특별한 날에는  선물을 주고받았는데 점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으셔서 육아가 바빠 깜빡하셨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서프라이즈라니. 너무 좋았어요.


너무 가깝지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16년이란 시간 동안 담담하게 우린 서로를 생각하며 응원하고 있어요. 삶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잔하고 담백한 사이가  소중하고 감사하답니다.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3월에 시누이 생신이 있네요. 올해에는 제가 깜짝 꽃선물을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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