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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un 07. 2024

내 치아는 24개.

치과가기 싫어요.

   "이대로 살래. 치아 26개 필요 없어."


또 하나의 걱정인형을 품에 안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왜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지. 매 번 있는 일이라 치과의 정기검진만은 언제 가는지 미리 일러주지 않는다. 검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치과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까지 아이는 늘 긴장상태로 살다 결국 장이 꼬이는 위가 탈이나 든 하기 때문이다.


"충치가 하나 있네요. 제거하고 때우겠습니다."

"으아아아앙~"

결국 터지고 말았다. 제발 충치가 없기를 아이도 나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비뤘건만, 이가 약하게 태어난 아이는 이번에도 역시 치료를 받고 가야 할 운명이다. 옆에서 동생은 남일 보듯 혼자 알아서 검진받고 스케일링까지 의젓하게 받고 있다. 우는 아이 달래랴, 방치된 아이 신경 쓰랴 이럴 땐 몸이 반으로 나뉘었으면 좋겠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좁은 진료실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형의 울음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게 느껴진 동생은 형을 한번 힐끔 쳐다본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번 올렸다 내리더니 입을 더 크게 벌리는 녀석. 알게 모르게 형보다 자신이 더 멋져 보인다고 생각이 드나 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이 순간 만은 맞는 말이다. 검진이 끝난 2호가 물로 가글까지 마치고는 대기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 동안 1호는 아직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해 인형을 품에 안은 채로 의사와 치위생사의 순차적 위로와 격려를 듣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1호. 이제 그만해.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거야??"

"무섭단 말이야. 왜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너만 여기서 울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얼른 하고 가자. 잠깐이면 돼."

"싫어. 안 하고 싶어. 그런데 해야 하잖아.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이미 그럴 시간 충분히 줬잖아."

"나도 알아. 그래서 울음 멈추려고 하는데 엄마가 나한테 뭐라고 하잖아."


후우... 말이나 못 하면 안쓰러움이 조금이라도 더 생겼을 텐데. 어깨를 들썩이며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내비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시간을 지연시켜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 배려아이콘은 아들이 빨리 하고 자리를 뜨길 바라고 있다.




 드디어 치료가 시작되었다.

"조금만 더 크게 벌려볼까?"

"아아~~~"

"아이고~ 잘하네. 잠깐 따끔해. 따~끔!"

"아아아아!!!"

"다했어 다했어. 잘하네. 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그랬을까?"


의사와 치위생사의 도움으로 충치치료는 우는 시간의 반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치료 내내 옆에 서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다독이며 혹여나 치료에 방해가 될까 눈치 보느라 온몸이 굳어있던 나도 그제야 힘을 빼본다.


"어머님. 치료는 다 끝났고요. 여기 x-ray사진 잠깐 보시죠.

 지금 여기를 치료한 건데, 1호가 치아가 약해서 다시 충치가 생길 수 있어요. 그때는 신경치료를..."

"나 신경치료 안 해. 으아아 앙"

지금 한다는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대기실에 나가 있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본인 얘기가 궁금은 한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인형만 더 세게 끌어안는 1호다. 그 덕에 의사는 나에게 한번, 아이에게 한번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해주느라 일과 시간을 2배로 늘려야 했다. 이렇게 민폐 환자가 될 줄이야. 너도 치과가 싫겠지만 나도 치과 오는 게 싫다 이눔아. 그러니 이제 제발 진상 좀 그만 부리자.


"그리고 문제는 여기 송곳니인데요. 1호가 입이 작아서 송곳니가 나올 공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여기 사진을 보시면 이렇게. 보이시죠? 위쪽에 자리를 잡을 것 같아요."

"아, 그럼 덧니가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럼 교정을 해야겠네요."

"그건 선택이신데 어차피 이가 다 나와야 교정도 할 수 있으니 일단 알고만 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일 간단한 치과치료도 이렇게 고생인데 교정이라니. 생각만 해도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전신마취를 시켜달라고 해야 하나? 수면마취가 나으려나? 아들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혼자서 많은 질문지를 만들어 걱정과 계획을 동시에 하고 있다.


"나 교정 안 할 거야."

"안 해도 상관없어. 그런데 이가 삐뚤빼뚤 나서 미관상 안 예쁠 텐데? 입도 툭 튀어나와 보이고?"

"그래도 안 해. 그거 아픈 거잖아."

"예뻐지려면 어쩔 수 없지."


별로 안 아프다고. 오늘처럼 처음에만 잠깐 아플 거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아이를 위로할 법도 한데 이성적인 엄마는 오늘도 팩트로 아이의 마음을 후벼 판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사실을 엄마가 놀리듯이 하나하나 짚어주는 것이 아이는 얼마나 서운할까. 그 마음을 알면서도 오늘 고생시킨 것이 못내 얄미워 나름의 복수를 하는 12살 같은 42살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 말만 한다.


"나 그래도 안 할 거야."

"난 치아 26개여도 돼. 영구치 필요 없어."

"마음대로 해라. 나중에 엄마한테 왜 안 해줬냐고 뭐라 하기 없어.

어른이 되어서 하면 더 아프고 더 오랫동안 해야 해. 그리고 그땐 네 돈으로 할 거고. 참고해."

"엄마 나빠. 엄마 미워."


결국 아이의 입에서 서운함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마음일까. 그동안 힘들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거마냥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1호에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저런 아이를 다 컸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하던 요 근래의 미련이 이렇게 씻겨 내려가는 걸까. 나쁜 엄마가 되어도 미운 엄마가 되어도 좋다. 이대로 어리광 부리는 아이로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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