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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되돌아보며

2024 연말정산

by 엔조

연말연초가 되면


나는 꼭 다이어리가 사고 싶어 진다. 캘린더를 몇 년 써봤지만, 바쁜 일정이 많지 않아 비어있는 페이지를 채우는 데 지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싫어져 이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빈 다이어리를 사서 들고 다닌다. 물론 새 다이어리를 산다고 해서 갑자기 갓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어리를 사는 과정 자체가 주는 행복감 때문이다.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며 설렘을 느낀다. 그래서 연말에 충동구매한 다이어리가 현재까지도 방치 중이다..


지키고자 했던 1순위


2024년의 최우선 목표였던 건강은 잘 지켜진 것 같다. 1~3월에는 마케팅을 공부하느라 거의 9시부터 00시까지 외부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를 제외하면 8~9시간씩 잘 잤던 것 같다. 운동도 주 4회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꾸준히 나가다 보니 체지방률이 4% 무게로는 4.3kg 정도가 빠졌다. 골격근량도 약 0.8kg 빠지게 되었는데, 운동을 할수록 건강보다는 수치와 근손실같이 데이터들에 민감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끼니에 단백질을 챙겨 먹으려고 하게 된 것도 24년에 새롭게 생긴 버릇 중에 하나이다.


25년에는 1순위를 취업으로 마음먹고 빠르게 취업해야겠다. 1순위가 무조건 이루어진다면 나는 취업을 하고 싶다.


2024를 빛내준 사람들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은 아저씨들이다. 나이로 치면 이제 30대 초에서부터 30 중반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애정표현으로 아저씨들로 부르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와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던 슈퍼 인싸형님부터, 보고 있으면 까칠 그 자체이지만 다정다감하신 형님, 그 형님을 보고 있으면 고슴도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와 성격이 제일 유사하셔서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으면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서로 귀여워 죽는다.


다른 형님은 처음 만났을 때는 꽤나 묵직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는데, 세상에 놀리다 보면 이렇게 잘 맞아 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귀엽고 탱킹력이 좋으신 재밌는 형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영어수업을 담당해 주시는 리더행님. 맨 처음 이형님을 봤을 때는 되게 잘생기셨는데 혼자 고독하게 태블릿을 올려두시고 무언가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계셔서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아주 쿨하시고 쾌활하시고 장난기도 많으신 형님이다. 이 형님을 보고 있으면 내 남중, 남고 시절이 떠오른다. 장난치는 스타일이나, 행동하나하나가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을 스타일이셔서 그런지 주변에 남자가 끊이질 않으신다. 올해 나를 나로서 있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이다.


음악으로 풍성했던 24년


23년에는 가장 즐겨 듣고 좋아한 음악을 10cm의 그라데이션과 부동의 첫사랑을 꼽았었는데, 부동의 첫사랑의 경우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합창하고 100여 명 정도의 밴드 세션분들이 모셔서 대규모 합주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그곳에 나도 합창단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어 잊을 수 없는 곡이다.


올해는 학창 시절 이후로 가장 많은 신곡을 알게 된 해였다. 마케팅을 배우면서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무엇이 유행하고 있는가, 뭐가 인기가 많은가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kpop 아이돌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woodz의 drowing이나, 이츠의 청록, 터치드, lucy, day6, 실리카겔등 락과 밴드뮤직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새로운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 보니, 음악 덕질하는 친구들이 그럼 이런 음악은 어때하면서 이것도 먹어봐 츄라이 츄라이 하게 된 게 시작으로 jpop도 먹게 되었다.


아이묭, 켄시, 히게단, mrs green apple, 요아소비, 요루시카, 유우리 등등 유명한 jpop은 다 들어본 것 같다. 물론 일본어를 몰라서 가사의 뜻은 잘 모른다. 나는 좋은 음악을 선정할 때 가사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24년에 jpop을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일단은 멜로디를 따라 음악에 익숙해지다 보면 갑자기 그 음악의 의미나 가사가 궁금하게 되고, 그 이후에 가사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나의 흥미를 이끄는 멜로디가 가사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독서와 성찰의 시간


올해는 독서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작년에는 한 달에 한 권 정도였지만, 올해는 많게는 이틀에 한 권씩 읽었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는데. 되게 좋은 변화인 것 같다.


23년에는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하나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경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어있는 소설이다 보니 내용은 경제 내용이지만,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강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24년에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면 오만과 편견과 이방인이다.

오만과 편견은 내가 가지고 있는 오만한 생각과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의해서 사랑을 시작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고전소설인데, 내가 너무 나만의 기준에 붙잡혀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 잘못된 생각으로 좋은 사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확실한 이상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상형이라는 것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진 기준과 편견이 좋은 사람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얼굴만 이쁘다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끌리는 게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그라데이션의 가사처럼 천천히 스며들어 결국엔 그 사람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로맨틱하지 않은가? 물론 현재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아서 사랑을 시작하면 다시 정의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뭐 어떠한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딱딱 떨어져 맞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방인은 뭔가 특이했다.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성격이 굉장히 피로도에 절어있는 한 사람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는듯한 느낌의 책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는 주인공,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굉장히 차가우면서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의 반응은 너무나 차가웠다. 너무 솔직했다고 표현해야 할까. 부모님인데 반응이 너무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나의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그때 나도 눈물이 안 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안 좋은 상상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 껏 해야 1년에 하루정도 그것도 설날에 음식 드실 때만 시간을 보냈다 보니 돌아가셨을 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장례식이 빨리 끝나서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정도 들었던 것 같다.


이방인과 더불어 페스트를 읽었었는데, 알베르카뮈의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단어는 부조리다. 세상은 굉장히 부조리하다는 인식이 책 전반에 은근하게 퍼져있는데, 페스트라는 병과 맞서 싸운 사람들은 죽고, 죄 없는 어린아이가 왜 죽어야 하냐고 울부짖는 주인공을 보자면, 마음이 짠하면서도 세상은 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세상과 이토록 무의미한 삶을 왜 살아야 하는가 되물어보게 된다.


마케터로서 도전과 배움


올해 마케터로 업종을 변경하려고 거의 달에 2번 정도씩 면접을 봤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취업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불합격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회사는 끝났구나 하고 그 과정을 닫으면 되니깐. 문제는 연락이 없는 경우다. 붙었는데 누락이 된 건 아닐까.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서류를 확인했는데 왜 연락이 없지? 별로라서 그냥 버려진 걸까. 학교가 별로라서 바로 휴지통으로 버려진 것일까. 확인을 하지 않는 것은 왜지? 괜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취업은 정말 멘탈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배우나 개그맨들, 심지어 비인기 아이돌조차.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 속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취업은 운이 따른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이유를 나에게서 찾자면 끝없는 자기 비하 속에 빠저버리고 말 것이다. 이토록 무의미한 삶을 살아서 뭐 하겠냐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내 삶의 의미를 내가 정의하고, 더 많이 시도하며 기회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부딪혀보고 그러는 와중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전화위복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묵묵히 할 일 하면서 계속 걸어 나가야지.


2024년은 도전과 배움의 연속이었지만, 앞으로의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해였다.


누구는 25살에 첫 직장을 가지고, 누구는 28살에, 또 누구는 30살에, kfc아저씨는 굉장히 늙은 나이에도 도전해서 성공하셨는데. 각자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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