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나누기와 간직하기 사이의 고민
최근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여성분이 "여자들은 친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비밀을 공유한다"라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비밀이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에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비밀은 곧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비밀을 공유하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비밀을 나누면 서로 더 친밀해지고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답을 들은 후, 나는 오히려 비밀을 밝힐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평생 관계를 유지하기란 어렵다. 부모님의 경우는 아들, 딸들이 독립하게 되면 설이나 추석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1년에 자주 보기 어려워지고, 친구들은 사회경험을 쌓고 자신에게 또 배우자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단지 유대감을 쌓기 위해 친해지기 위해 공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라는 답변은 비밀을 밝힐 이유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은 좋아하는 이성에게 자신의 약점인 목덜미를 드러냄으로써 호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생각하면,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관계를 중요시하는 형태로 진화를 해왔기 때문에 비밀이나 자신만의 약점을 공유해서라도 소속감과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반면,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능력이 없다면 도태되고 무리에서 버려질 수 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이 너 못생겼어 너 재미없어 등등 인격을 까내리는 말에도 크게 동요를 받지 않지만 너 게임 못하잖아 같이 남자의 능력적인 부분을 건드리게 된다면 쉽게 화를 내는 것이, 남자들은 경쟁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자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이나 여자친구에게 고통을 나누는 것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여 나누지 않는 것 같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밀을 공유하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비밀을 가족 내에서도 철저히 감추는 경향이 있는 반면, 라틴 문화권에서는 정서적인 공유가 관계의 핵심 요소로 여겨져 비밀조차도 쉽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서양권 나라에서는 상담사나 심리치료사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고 해결하려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동양권에서는 개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커 속으로만 삭이는 경우가 많다.
비밀은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비극적인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피해 경험, 투자 실패, 집안 사정, 성 정체성 등 무거운 주제는 상대방이 나를 피하거나 관계가 멀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낳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비교적 가벼운 비밀부터 절대 드러내지 않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 같은 비밀까지 존재한다. 때로는 솔직하지 않은 것이 관계를 지키는데 더 유리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의 인물을 예로 들자면, 이방인의 뫼르소의 경우 너무 솔직해서 해를 입은 케이스이다.
작중에서 그의 성격은 감정이 메마른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이와 더불어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어머니의 죽음에는 슬퍼해야 해.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에는 어느 정도 슬픔을 간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해 와 같은 부분을 뫼르소는 지키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오랜만에 만난 여자와 코미디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사회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요즘말로 사회화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프지 않더라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어느 정도 슬픔을 간직하는 척 시간을 보냈다면, 살인을 저지른 뒤 어느 정도 잘못을 뉘우치는 척을 했더라면, 그는 사형까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솔직했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느낀 점을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단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원하는 행동이 아니었을 뿐이다.
연인 사이에서 비밀은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되게 흔한 거짓말은 저 연예인이랑 나랑 비교해서 누가 이뻐? 같은 질문에 있다. 이미 답이 정해진 질문 속에서 남자들은 여자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듣고 싶은 답변을 주로 하는 편이다. 이때 솔직히 말해도 된다는 여자친구의 말을 덥석 물어 잘못된 답변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가벼운 비밀도 있지만 남들에게 말 못 할 무거운 비밀 역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연인들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면,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무거운 비밀도 조금씩 공유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요소다.
너무 이른 타이밍에 공유된 비밀은 둘의 관계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 못 할 취향이나, 가정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모아둔 돈에 대한 이야기 같은 비교적 무거운 이야기는 대답에 따라서 상대로 하여금 정을 떨어트릴 수도 있는 꽤나 치명적인 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인사이에서도 상대방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성숙하게 관대하게 묻지 말고 덮어두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파보려고 할수록 서로 간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비밀의 존재 자체가 관계의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런 점에서 항상 강인한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이를 금방 눈치채고, 나한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곧 관계를 무너뜨릴 작은 씨앗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웃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시간이 되면 말해줄 것이다.
비밀은 무덤까지 간직하라는 말처럼, 남자들에게 있어서 비밀이란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은 답답할지라도 여자분들은 상대방을 조금은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