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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쿠팡 근무를 시작하다.

출석체크가 가장 어려운 쿠팡.

by 엔조

어느 날 갑자기 쿠팡 근무를?!


일을 구하면서 어느 정도 구직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쿠팡 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살면서 쿠팡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생활비를 벌어야 사람 구실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쿠팡에 손을 대게 되었다.


쿠팡 근무 시스템


쿠팡에서 일하는 시스템은 쿠펀치라는 자체 앱을 통해 운영된다. 언제, 어떤 센터에서, 몇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할 건지를 세세하게 선택하여 본인이 직접 신청하는 방식이다.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근무가 확정되는 건 아니고, TO(남은 자리)가 있으면 하루 전날 근무 확정 문자를 받게 되어야 해당 날짜에 일을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하루 전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도했지만, 하나도 확정되지 않아 한 주를 통째로 날렸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미리 신청했더니 다행히 3일 동안 근무가 확정되었다. 쿠팡 근무 등록은 어느 정도 선착순으로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근무 확정은 전날 오후 4~5시 사이에 이루어지며, 이후 TO가 발생하면 추가 연락이 온다. 대부분은 오후 9시에 확정되며, 늦으면 밤 10시에도 확정 문자가 온다고 한다.)


첫 출근의 설렘과 긴장감 : 셔틀부터 고난시작


근무 전날 21시에 확정 문자를 받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보고자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근무를 위해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지 않고 4시 50분, 55분, 5시에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했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설레기도 하고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되어 잠을 설쳤다.


다행히 다음 날 알람 소리에 바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토스트와 닭가슴살, 계란까지 야무지게 아침을 챙겨 먹고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셔틀버스에서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원더셔틀이라는 앱을 통해 버스 정기권을 구매하고 QR코드로 출석을 처리해야 했는데(문자에 적혀 있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기권 구매를 잊었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버스 안에서 구매 후 QR코드 처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일보다 어려운 쿠팡 출석체크


버스 안은 불을 꺼 근무자들이 센터에 도착하기 전까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센터에 도착한 후, 사람들을 따라 출석 장소로 이동했다. 출석체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처음 근무를 하는 사람들과 월컴데이로 오신 분들이 모여서 출석을 진행하였다. 출석 체크는 개인 전화번호로 생성된 원코드를 이용해 진행됐다.

이 코드는 이후에도 수시로 출석 체크에 사용되었다.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인터넷은 되지 않고 오직 출석만을 위한 센터 와이파이를 잡은 채로 체크인을 하고 원코드로 출석체크를 마무리하면 출석은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이미 여러 번 출석해 자연스럽게 출석을 하고 있는 무리와 처음 와 어리바리 얼타고 있는 신입들, 그리고 오랜만에 센터를 방문한 웰컴데이분들의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 과정에서부터 이미 진이 빠지기도 하였다.


출석을 어째 저째 마무리하고 나니 방한복과 안전화를 받아서 환복을 하러 갔다. 나는 보통 M 사이즈를 입는 편이었는데, 친구의 조언에 따라 조금 크게 L사이즈를 처음에 받았다. 하지만 겨울옷을 착용한 채로 방한복을 덧입다 보니 L도 활동하는데 불편함을 느껴 둘째 날부터는 XL사이즈를 입고 근무를 하였다.


입고 파트 적응하기


환복까지 마치고 나니 신입으로 출근한 사람들은 기초적인 교육을 1시간 정도 시청 후에 각자 지원한 파트로 이동해 다시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내가 선택한 일은 입고로 일이 어렵지 않은 편이었는데, 물건을 상품단위 거나 박스단위로 진열장에 남은 자리에 진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각자 상품들을 선택하고 진열하는 업무이다 보니 내향적인 사람들이 하기에도 적합한 업무였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전혀 나누지 않기 때문에 살짝은 외로운 느낌이 들면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가벼운 이야기나 질문할 사람들도 없기 때문에 처음 근무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알맞게 처리하고 있다 의심이 들기도 하고, 검사해 주는 사람들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토닥이며 일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각자 작업한 수치는 PDA라는 기기에 기록된다. 진열 방식은 물건을 나중에 꺼낼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배치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작업자의 양심에 따라 후속 작업자의 편의성이 달라졌다. 일을 대충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PDA에 기록이 남아 이후 근무 신청에 불이익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냉동고 근무의 고충


입고 업무는 어렵지 않았지만, 냉동고에서의 근무는 -20도라는 온도가 큰 문제였다. 방한복과 방한모를 착용했지만, 기기를 터치하기 위해 장갑을 벗었다 껴야 했고, 이로 인해 손이 상처 나고 쓰라렸다. 마스크 안은 입김과 콧물로 가득 차 불쾌감이 컸다.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게 느껴졌고, 냉동고 근무는 2~3일이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 시간 속에 버려지는 시간들


또 다른 어려움은 셔틀을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점이다.


예전에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9시에 근무를 시작하다 보니 7시 반정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는 편이었었는데, 가끔은 운동을 하고 출근하기 위해 6시에도 종종 일어나 헬스장을 가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5시에 일어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출근준비시간과 셔틀로 이동하는 시간 다시 퇴근 이후에 셔틀시간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겪고 나니 이야기는 달라졌다.


출근 전에 밥을 먹지 않으면 근무를 하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나는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쿠팡에서 17시에 퇴근을 하고, 17시 반에 셔틀을 타고 정류장으로 도착하니 18시 30분 정도.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19시가 조금 넘은 상황 저녁 먹고 샤워하고 나니 20시. 그리고 나는 다음날 또 쿠팡을 가기로 되어있어 최소 22시에는 자야 6~7시간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근무를 위해 10시 전에 잠들어야 했기에 하루 중 자유 시간은 2시간 정도밖에 없었다. 이미 몸이 피곤해 독서나 영어 공부도 하기 어려웠고, 멍하니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쿠팡 근무를 통해 얻은 동기부여


이렇게 3일을 보내고 나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동시에 약간의 우울감과 함께 큰 동기부여를 얻었다. 출퇴근과 준비 시간으로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팡을 나가기 전에는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헬스장도 다녀오고 했었는데, 일찍 일어나기 위해 10시 전에 잠들고 5시에 일어나면서 그리고 출퇴근시간에 버려지는 거의 3~4시간.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라도 빨리 일을 구해서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쿠팡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개미지옥 같았다. 하루 근무하면 다음 날 바로 일급이 들어와 급전이 필요할 때 유용했다. 선착순 지원 방식으로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돈이 필요하거나 시간이 남으면 자연스럽게 쿠팡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취업이 어려워지면 지금보다 더 자주 쿠팡 근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팡은 필요할 때 단기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일자리지만, 나에게는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더 많은 회사에 적극적으로 지원해 취업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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