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일까?
나는 내가 제법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현실적인 것이랑 부정적인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아"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what if.
만약에 ~한다면이라는 영어 표현인데, 요즘은 밸런스게임을 물어볼 때 주로 사용하는 화법이다.
그리고 나는 밸런스게임을 잘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그런 상황은 나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답변을 하기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현실적이다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실적이라는 표현에는 어딘가 모를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한계를 정해 두고, 그 한계 안에서만 가능성을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며, 나는 현실적이라는 타이틀에 갇혀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표현이 내게 슬픔을 주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생각을 거치고 나니, 현실적이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사람이다라는 표현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적이라는 태도는 부정적인 시각과 연결될 때가 많다. 현실적이라는 말속에는 안 될 이유를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담겨 있다. "그건 불가능해"라는 말이 현실적이라는 태도의 핵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질까 두려워졌다.
나는 스스로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는데, 사실은 내가 너무 현실주의자라서, 나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둬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내가 안될만한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적이다라는 타이틀을 이제 내려두고 싶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긍정적인 생각은 내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를 준다. 반면, 부정적인 태도는 내가 안 될 이유를 만들어내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현실적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부정적인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다라는 표현에는 슬픈 느낌도 있지만 어딘가 모르는 차가운 내면이 같이 담겨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차갑다. 사회는 차갑다. ○○은 차갑다. 그리고 이러한 차가움이 내 안에도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차가운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 한계를 두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는 낭만주의자가 되고 싶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한계를 두고 싶지 않다. 현실적이라는 태도를 내려놓고, 이상과 낭만을 쫓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발명을 이루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가능해졌다.
어느 분야에서든 낭만과 창조를 발견하려는 태도는 나를 긍정적이고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현실적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면,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현실적이라는 표현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였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벽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 방패를 내려놓고, 나를 더 자유롭게 할 태도를 선택하고 싶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으로서 내 삶을 설계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는 내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