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생의 이름으로
계절이 변하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린 걸까. 이번 주는 유난히 따뜻한 한 주였다. 하지만 나는 감기에 걸려 병든 닭처럼 힘겹게 한주를 보냈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열기와 식은땀에 휩싸였던 화요일, 내 상태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친구가 "너 상태 되게 안 좋아"라고 했지만, 애써 모른 척 밝은 척하려 했다. 그래도 몸의 상태를 숨길 수는 없었는지 친구의 계속되는 걱정에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최근에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다고 해서 병원에 도착한 나는 꽤나 두려움을 안은채 진료를 기다렸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잠복기 중 일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독한약을 처방받았다. 약이 얼마나 독한지 식사를 마친후에 약을 먹고 나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 정도로 독한 약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잠이 많은 터라 낮잠이나 선잠을 자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기절하듯 잠들었다가도 20~30분 뒤에 깨어나,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그중 하나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소설이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닉 캐러웨이로, 그는 개츠비의 삶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주인공이자 개츠비를 관찰자하는 위치에 서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향한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그는 가난했던 과거 때문에 데이지를 떠나야 했고, 다시 그녀를 되찾기 위해 불법적인 사업을 벌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과거를 되돌려 데이지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닉은 이런 개츠비를 보며, 주변의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개츠비를 향해 “그 인간들은 썩어 빠진 무리예요. 당신 한 사람이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를 ‘위대한 개츠비’라고 칭한다.
하지만 정말로 개츠비는 ‘위대한’ 사람일까?
나는 원래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결같은 사랑은 로맨틱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츠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신분 차이라는 현실적인 벽을 뛰어넘기 위해 돈을 벌었고, 그녀를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개츠비가 사랑한 것이 실제의 데이지인지, 아니면 이상화된 데이지인지에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데이지는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개츠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데이지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함께하라고 강요한다.
이는 과연 순수한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나는 개츠비의 사랑이 단순히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는 과거의 데이지를 이상화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의 행동은 로맨틱하면서도 이기적이며, 데이지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한결같이 사랑했다는 점에서 존경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무시한 자기만의 환상이었다는 점에서 과연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츠비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 톰 뷰캐넌을 보면 개츠비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톰은 태어날 때부터 부유했으며, 자신이 가진 특권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는 불법적인 사업으로 부를 쌓은 개츠비를 경멸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부정을 저지르며 불륜을 일삼는다. 자신의 행동은 용납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가차 없이 잣대를 들이대는 인물이다.
그러나 개츠비를 톰과 비교하는 것만으로 그의 위대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개츠비는 단순히 돈을 벌어 데이지를 되찾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지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인물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몰다가 톰의 불륜 상대였던 여성을 치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개츠비는 자신의 차를 운전한 사람이 데이지라는 사실을 숨기고, 대신 자신이 운전했다고 말하며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데이지의 마음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녀를 끝까지 보호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개츠비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을 책임의 형태로 받아들였다는 점, 그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졌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개츠비가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그를 사랑한다고 했던 데이지조차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톰 역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닉은 이런 모습을 보며 개츠비의 삶과 죽음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닉이 개츠비를 ‘위대한’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그가 사랑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지려 했던 마지막 순간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한 인물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끝까지 희생한 점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주변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나는 개츠비가 한없이 애처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꿈과 사랑을 향해 질주했지만, 결국 그 사랑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위대한 인물이라 부를 수도, 혹은 가장 슬픈 인물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