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와 영화를 경험하면서 느낀 변화
3월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며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1일에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를 방문했고, 2일에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를 관람했다. 평일 중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8일에는 블리치 20주년 전시회를 다녀왔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고 나니, 마음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다.
평소 영화나 전시를 즐기지 않던 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상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원래 전시나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늘 어렵고, 전시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가봤자 잘 즐기지 못할 거야 라는 이상한 고집과 편견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영어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의 지인 분이 표를 구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국립중앙박물관은 나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전시는 2시간을 조금 넘게 감상했다. 나도 이렇게 오래도록 전시를 볼 줄 몰랐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과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감상법을 발견했다. 나는 그림을 볼 때 색감을 중심으로 감상하고, 그 색이 다른 사물이나 장면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을 즐겼다.
예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다 보니,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식이 생긴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 예술은 꼭 ‘어렵게’ 감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눈앞에 펼쳐지는 색과 형상을 즐기고, 그것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위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외국 배우인 ‘톰 하디'를 떠올리게 되었다. 작품 속 소녀의 눈썹과 눈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마치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처럼 보였다.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남성적인 느낌이 들었고, 그 분위기가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내 감상을 들은 친구들은 “그게 무슨 개소리야?”라며 웃어버렸다. 아무래도 내 개인적인 연상법이 너무 독특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나만의 감상 방식이 아닐까 싶다. 예술은 정답이 없는 것이니까.
위의 작품은 색감과 질감만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작품 속 색감에서 나는 패닉엣더 디스코의 ‘High Hopes’라는 음악을 떠올랐다. 실제로 둘을 비교해 보면 다른 요소가 많았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만큼은 노래의 리듬과 음감이 작품과 어우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날 전시에서는 에곤 실레의 작품이 꽤 많았다. 그중에서도 그의 자화상 시리즈가 특히 눈에 띄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화상’은 소설 인간 실격의 표지로도 유명한데, 그 때문인지 그림 자체보다도 소설의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
에곤 실레의 화풍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가 강한데, 이를 보면서 나는 밝고 희망적인 느낌의 작품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이
에곤 실레의 화풍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의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인간 실격의 분위기와 연결 지은 것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의 그림을 그러한 감정선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8일에는 블리치 20주년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번에도 영어학원에서 알게 된 지인이 표를 구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방문했다.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 그분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책에 푹 빠져 살았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PC방, 당구장, 노래방, 만화방, 오락실 정도가 주요한 놀거리였다. 내가 살던 집 근처에 큰 만화방이 있어 내 학창 시절 용돈의 대부분을 만화책을 읽는 데 사용하곤 했다.
일본의 3대 만화라 불리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다 본 나에게. 이번 전시는 정말 반가운 경험이었다. 이전 베르세르크 전시회와 달리, 피규어 중심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영상과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점이 좋았다. 스토리의 주요 흐름을 4개의 큰 스토리라인"사신대행 편, 소울 소사이어티 편, 웨코문드 편, 천년혈전 편"으로 나눠 진행한 점이 흥미로웠다. 몇백 화 되는 애니메이션을 빠르고 간결하게 편집한 영상들이 많아, 스토리의 엑기스를 맛있게 요리한 느낌이었다.
다만 나는 아직 천년혈전 편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해가 어렵고 공감이 부족해 아쉬웠다. 빠른 시일 내에 넷플릭스에서 정주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영상콘텐츠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우의 감정에 깊게 몰입하는 성향 때문이다. 주인공의 상황이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답답함을 쉽게 느끼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크게 밀려온다.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관객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영화 한 편이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비교적 거리감을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책이나 음악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음악을 감상할 때도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현이 있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기타, 일렉기타, 베이스 등등 악기들의 소리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그 가수의 감정선을 따라 깊게 몰입하곤 한다. 하지만 음악은 영화보다 짧게 끝나기 때문에 감정 소모가 덜하다. 반면 책은 장기간 몰입해야 하므로, 피로감이 쌓이지만 챕터를 나누고 텀을 두면서 읽으면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괜찮은 편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플랫폼이 나오기 이전, 지금으로 치면 거의 10-20년 전에 드라마는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에 티비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가족끼리 드라마를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틀어진 영상을 보는 방식이기에 내가 그 영상을 잘게 나누어 즐기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의 습관이나 기억들이 몸에 남아있는지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를 끊어서 보는 것을 잘 못하다 보니 그러한 콘텐츠들을 즐기기 전부터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마블보다는 DC의 배트맨 시리즈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마블 영화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마블 팬이 아니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추천해 주어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잘 즐겼다.
팔콘이었던 주인공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캡틴과 대통령, 아버지와 딸, 그리고 빌런 간의 갈등 구조가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마블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몰라도 이해하기 쉬운 구성이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개봉해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했지만, 두 작품을 모두 본 친구가 “캡틴이 더 낫다”는 말을 듣고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3월이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많은 콘텐츠를 경험했다.
특히 감사하게도, 주변 지인들이 초대해 주거나 선물해 주신 전시회가 많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점이 행운이었다. 평소 잘 보지 않던 영화나 전시를 보며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을 했다는 점도 새로웠다.
나는 여전히 영화는 보려고 하면 일단 스트레스부터 받는 사람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가끔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거리를 두려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콘텐츠들을 보다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익숙해지고 싶다.
추가적으로 위대한 개츠비 감상을 함께 쓰려했지만, 이미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따로 정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