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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균열, 그리고 구의증명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by 엔조

다시 스케줄 근무로 돌아가며


몇 년 만에 스케줄 근무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스케줄 근무를 하면 보통 주말에는 일하고 평일에 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꽤 외로운 일이다. 특히 내향인의 경우, 친구 같은 외부 자극이 없으면 집에서 나오지 않게 되고, 평일 휴무는 그냥 체력만 회복하다가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날이 되어버린다. 정신 놓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흘러가 있고, 나는 그저 물살에 휩쓸려가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나에게 잔소리해 주는 사람도, 재촉해 주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고, 조언도 내가 받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조언하던 사람들도, 상대가 바뀔 의지가 없다고 느끼면 결국 말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결국 나를 재촉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차가운 현실만 남는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흘렀을 때, 무엇이든 내가 이뤄놓은 것이 남게 된다.


일상의 붕괴와 고민


스케줄 근무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지만, 3월 중순부터 이미 근무를 하고 있다. 지금은 11시부터 8시까지 마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집에 도착하면 밤 9시.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마치면 어느새 10시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내가 다니던 헬스장이 10시면 마감을 한다는 점. 그래서 내 일상 루틴에서 운동이 빠져버렸다.


나는 거의 3년 가까이 평일 주 4일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일 때문에 못 하게 되니까, 몸이 근질근질하다. 사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아침으로 운동을 옮기는 건 큰 도전이다. 직업이 있든 없든 항상 7~8시간은 꼭 자려고 노력했고, 쉬는 날에는 외부 일정이 없으면 10시간도 잘 수 있다. 그래서 아침 운동도 생각해 봤지만, 솔직히 내가 아는 나라면 매번 잠에 질 것 같아서 일단은 보류 중이다. 하루의 시작을 패배감으로 여는 기분은 별로일 것 같아서, 아침부터 지는 싸움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잠에서 한 번 깨면 낮잠을 자거나 졸지 않는 타입이라, 오후에 생산성이 높은 편인데, 그 흐름이 지금까지 꽤 잘 맞아왔기에 더 고민이 된다.


어떻게 이 관문을 넘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 근질근질한 감정을 잘 참았다가, 이 기분을 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대체해 쉬는 날 몰아서 운동을 당기는 수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리듬을 잃은 느낌이지만, 언젠가 이 새로운 흐름도 내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란다.


이번 주 소설은, 구의증명


이번 주에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인간 실격'만큼이나 어둡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지인의 말에 흥미가 생겨 책을 집어 들었고, 생각보다 얇은 책이었기에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면, 어딘가 빈틈이 많아 보이는 소설이다. 설정이나 개연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요소를 내려놓고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절절하면서도 아쉽고, 인물들의 선택이 공감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꼭 그랬어야 했나” 싶어 비난하고 싶은 감정도 들었다.


소설은 인물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시간의 순서가 약간 뒤섞여 있다. 그래서 며칠에 나눠 읽기보다는 하루를 잡고 한 번에 읽는 편이 더 적합한 소설 같았다.


이전까지 내가 읽은 고전소설들은 읽고 나면 뭔가를 ‘배웠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이번 책은 달랐다. 배운 것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 인물들이 사는 세계에 잠시 초대받아 슬픈 이야기를 들어준 느낌.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조용히 이 세계에서 빠져나온 듯한 감정.


나는 원래 책에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정보를 얻는 읽기를 선호하는 편이고, 읽고 나면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습관도 있다. 그런데 '구의 증명'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은 그냥 구와 담의 슬픈 사랑이야기이고, 그 이상으로 결론을 내리는 순간, 이들의 사랑을 내가 판단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다 읽고도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남아,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 주는 변화의 조짐 속에서, 흐트러진 일상을 다시 어떻게 다잡을지 고민한 한 주였고, 그 틈에 '구의 증명'을 만나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잠시 멈춰 섰던 시간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런 슬픔도, 혼란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도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다만 놓치지 않아야 할 건,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만은 나에게 계속 물어봐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 물음 하나가, 나를 다시 구해내는 시작일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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