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예술의 도시 – 빈에서 만난 얼굴들》
“여러분, 주목! 풍경사진은 나중에 다 삭제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인물사진을 많이 찍으세요.
여러분 얼굴, 웃는 표정, 그게 남는 겁니다!”
가이드님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장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아,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남는 거구나.
그제야 비로소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의 얼굴을,
남편의 뒷모습을, 내가 바라본 누군가의 옆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자유여행을 처음 해보는 가족답게,
나는 출발 전부터 ‘교통편+숙소+조식+안전+예산’이라는 이름의
폭풍 검색과 광클 속에서 살고 있었다.
“가족여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엔
‘고객중심형 엄마 가이드’라는 자막이 자동으로 뜨곤 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중학생 두 아들과의 여행이란,
단순한 여행이 아닌 매 시간의 이벤트라는 사실을.
큰아이는 DSLR을 들고 움직였다.
마치 이 도시 전체를 현미경처럼 기록하겠다는 듯.
“언제 또 와보겠냐며, 첫 해외여행인데…”
말끝마다 히죽히죽 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 표정만으로도 흥분과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빈 시내 한복판에서 뜻밖의 얼굴이 다가왔다.
“선생님?”
아이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든 순간, 우리 앞엔
그의 중학교 교생 선생님이 서 있었다.
서로 멋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주고받았다.
낯선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는 건
조금 놀랍고, 조금 반갑고, 어쩐지 감춰진 내가 들킨 기분이기도 했다.
큰아이는 신이 난 듯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어디서 찍으셨어요?”
그들은 금세 사진 배틀에 들어갔다.
“저는 프라하에서만 300장쯤요.”
“와, 전 여기까지 합치면 400장 넘었는데요?”
큰아이는 손을 번쩍 들어 ‘내가 이겼다’는 제스처를 날렸다.
그 표정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교생 선생님은 웃으며 한마디 남겼다.
“너가 WIN.”
둘은 나란히 폰을 열고
사진을 보여주며 어깨를 부딪치고 장난을 쳤다.
마치 누나와 동생처럼,
스승과 제자라는 틀을 벗고 친구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여행이란 결국,
우연히 마주치는 얼굴과
그 안에서 생기는 감정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풍경은 결국,
마음속 한두 장면만 남는다.
하지만 사람과 웃음은 오래도록
사진 없이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ing 리디아 기억
AR2TI-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