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면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이다. 이상하게 문학동네 시집은 절제미가 있는 것 같다. 시집의 얇기라던가, 종이 재질, 표지색 구성, 표지 제목 글꼴 등등 굉장히 세련되어 보인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 시집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고 좀 도도해 보인다.
아마 박준 시인의 시집도 마찬가지로 내가 서점에 가서 익숙하게 시집 코너로 가장 먼저 갔을 것이다. 그리고 제목을 천천히 읽다가 제목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주저 없이 고르고 그렇게 12년을 묵혔다. 책은 사기는 쉬워도 읽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밥심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로 "밥은 먹었냐?" 아니면 "밥 먹어!"라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밥을 먹지 않으면 헛헛해한다. 마치 뽀빠이에게 시금치가 필요하듯 우리 엄마에게는 밥이 필요하다.
시집 제목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길래 떠올라서 적어보았다. 나도 그런 적이 있을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 사람의 이름을 며칠은 지어먹었던 적 있다. 사람 이름 그 자체에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 제목은 굉장히 좋은 제목 같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 그 시를 골랐다. 일단 나는 '여름'을 좋아하며 시집 제목과 같은 '이름'이 붙어있다. 그리고 얼추 읽어봤을 때 뭔가를 추억하고 떠올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고, 마지막에 '당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레카. 이 시라면 시 제목과 어떻게 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연에 독재가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그 독재가 맞다. 독재란 단어가 붙으면 자연스럽게 박정희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4.19 민주화운동도 연상이 된다. 그리고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불안을 '기침'으로 표현했다는 말이 되게 잘 와닿았다. 감정이 어떤 신체적 반응으로 치환되는 것은 익숙한 모습인데 그것을 시인은 정돈된 언어로 잘 표현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에서 이 표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이 표현은 영화적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된다. 나를 걱정해 주던 사람이 이제는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정말로 이 구절이야 말로 책갈피로 만들어야 바람직하다.
중략한 내용 중 '팔리지 않은 광어'가 '내 이름'과 같다는 것과 그리고 화자는 살면서 '동명이인을 만난 적이 없다'라는 사실이 재밌었다. 3개의 각기 다르지만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를 시인이 적재적소 하게 잘 매치시켰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벽면에 난류는 곰팡이이려나, 그동안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내 주름이 늘었다고 한다. 확실히 시인의 표현은 다른가보다. 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표현하려고 다른 대상의 시간을 빌려오는 것이나, 혹은 광어를 썼으니까 뒤에 난류를 쓰는 것이 좋았다.
내가 이 시를 왜 골랐냐고 한다면 바로 이 구절 때문이다. 여름이라는 상황 속에 다양하고 일상적이며 특별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서술되면서 특별해지는 저 순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동어 반복은 피해야 하지만 저렇게 동어 반복으로 특별하게 서술할 수 있음을 나는 <여름에 부르는 이름>이란 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잘, 이라는 단어 뒤에 잠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되게 어울리며 잘 어울리는 선택 같다. 시인이 특별하지 않은 순간을 시인만의 언어로 특별하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약풍'과 '수면장애'와 '강풍'과 '악몽' 사이라니. 난 시인만의 호흡법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난 이 구절도 아주아주 마음에 든다. 마지막 행에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라니. '오래된 잠버릇'이란 오래된 이불처럼 되게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당신의 궁금한 이름'은 당신의 소식을 오랫동안 못 들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엎지른다'는 참고 참아도 주체할 수 없는 화자의 마음 같다.
확실히 이건 이별 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별 시만큼 공감되고 또 몰입되는 시도 없는 것 같다. 사랑을 했던 사랑을 하지 않았던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보편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 글을 고치는 동안 난 이 시를 읽고 싶어졌다. 마치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의 커피 맛을 떠올리고 그 집에 가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신기한 경험이다. 내 일상에 시가 녹아져 있어 꽤나 행복하다.
여름, 이름, 그리고 그리운 사람. 문득 박준 시인이 좋아졌다. 과거 박준 시인의 강연을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얼굴은 기억 안 나도 목소리가 꽤 안정적이었음을 또 말을 조리 있게 잘했음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