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또 기어나가!
새벽이나 밤늦게 몰래 나갈라고 치면 와이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도대체 어디에서 뭐 하고 다니는 거냐고? 당연히 달리기 해야지... 몸에 좋은 운동을 한다는데, 눈총을 견디기가 어렵다.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하지만, 자꾸 반복되는 질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만다.
“아니 내가 뭐! 나쁜 짓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운동하는 것까지 뭐라고 그래!”
“매일 미친*처럼 뛰러만 다니고, 애는 안 보고 나 다니니까 그렇지!”
매일 평행선 같은 ‘러닝을 같이 하지 않는’ 부부의 일상이다. 이런 고민을 가진 러너들이 정말 많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부부가 같이 러닝을 하면 좋다'라고 러너들끼리 조언을 해주고는 한다. 하지만 뭐 사람 마음이 모두 다 그렇게 같은가. 사람의 체력 수준이나 취향이 있기 때문에 맞추는 것이 쉽지가 않다. 심지어 육아나 업무 같은 각자의 상황들도 있기 때문에 이 ‘취미’를 맞추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맞추지 못하는 가정의 러너라면 굉장히 힘든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도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면(30대 후반이었다), 삶의 낙을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일상이 단순해지며 매일 건수를 찾아 술 마시러 다닌다던지, 누워서 TV나 휴대폰을 보거나, 식사를 할 때 꼭 반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등의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매일 열심히 관리하고, 운동을 통해 긍정적인 일상을 만들어가는 남편을 이렇게나 비판하나 싶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상이 달리기에만 꽂혀 있는 나를 보며 자신과 아이들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나도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동의 긍정성을 모르는, 혹은 질투하는 사람들의 투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일반인과 러너들 각자가 달리기를 생각하는 수준은 상당한 시각 차이가 있다.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달리기 아니 마라톤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러닝에 집중하는 사람들인 우리는 절대 많이 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이렇게나 갭차이가 크니, 심지어 같이 달리지 않는 부부는 당연히 트러블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간 나의 뇌피셜과 러너들 사이의 대화를 토대로 나름대로 기준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일반인은 일주일에 2~3번을 달리러 나가면 굉장히 달리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한 번 달릴 때 약 5킬로 정도를 달리면 엄청난 거리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안 달리는 사람은 그 고통스러운 유산소 운동 1~2킬로 도 엄두가 안 나는데 반해 이 5라는 숫자의 거리를 굉장히 멀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진짜 러너들은 매일 달린다. 하루에 두 번 달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건강에도 좋지 않다), 대부분은 매일 달리면서 자신의 루틴을 맞춘다. 그 대신 강약을 조절한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강하게 혹은 장거리를 뛰고, 평소에나 힘들게 뛴 그다음 날에는 가볍게 천천히 뛰면서 몸 컨디션과 심박을 관리한다. 스케줄이 매우 철저하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5킬로는 많이 뛰는 것이 아니다. 일전에 언급한 기준으로 일정 수준의 기록을 내려는 러너라면 월 200km 이상 달려줘야 함을 생각해야 한다.
5킬로를 30일 동안 매일 뛴다고 해도 월엔 150km 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 웜과 쿨다운 같이 본 게임 전후로 가볍게 1~2킬로를 채워 최소 7km 이상은 채운다. 물론 어쩌나 쉬는 날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럼 월 300km 이상을 뛴다면 매일 10킬로 이상 앞 뒤로 몸풀기 달리기를 포함해서 달려줘야 한다. 아니 하루 걸러 하루 5킬로만 뛰어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매일 이렇게 10킬로 가까이 달리는 러너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고 볼 것이다. 이렇게 달리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정말 크다.
건강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달리기를 안 하는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로서 달리기를 하면 무릎이나 다리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달리기는 정말 건강한 운동이다. 특히 달리기가 무릎 관절을 망가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책으로 의사들이 쓴 책인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2018)' '달리기의 모든 것(2022)' 등의 책들도 말해준다. 실제 달리기를 하는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학적인 지식을 통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도 달리기는 축구나 농구 등의 구기 운동 같이 갑작스럽게 틀거나 뒤틀지 않고, 일정하게 힘을 주고 단련시킬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덜 위험하고 건강한 운동이다. 물론 그런 측면에서는 걷기도 큰 도움이 된다. 아마 운동 중에 가장 피해가 없이 건강한 운동을 두 개만 꼽자면 걷기와 달리기일 것이다. 러닝을 하면 무릎 나간다는 말은 의학적으로 잘못된 상식이다. 물론 무리하는 경우는 제외이다.
결론적으로 일반인과 러너들의 갈등을 서로 이해하는 측면에서 바라봄이 필요하다. 이들은 관점 자체가 아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하자고 시작한 달리기가 주변 인간관계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생기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건강하지고 시작한 달리기가 나만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관계의 건강과 유익으로 다가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공통된 시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아직 달리기의 세계를 모르는 일반인에게 이해를 바랄 수는 없다.
달리기 전의 인생을 아는 러너들이 더 마음을 내어, 일반인과의 갈등을 이해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러너라면, 또 달리러 나가냐는 주변의 타박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