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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Feb 25. 2024

세상 든든한 아군을 획득하였습니다

D-34 상사 복이 있다는 것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독립투사처럼 동료와 우리 팀의 봄을 부르짖기를 5 년. 드디어 거짓말처럼 햇살 같은 팀장님이 오셨다. 개편 때마다 히틀러 같은 상사가 다른 부서로 가기를 치성드렸지만 요지부동이거나 엇비슷한 분이 오셨다. 몇 년간 고배를 마셨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하늘이 천사 같은 상사를 내려 주셨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행운이 온다. 존버(?) 끝에 말이다.



보통 상사가 새로 오면 팀원부터 불러 모은다. 상견례를 핑계로 결의를 다지지만 숨은 의미는 기강 잡기, 간 보기 정도이다. 이제부터 싹 다 바꾸자며 나를 따르라 달려 보자 한다. 시끌벅적 호들갑에 휘둘리면 정신이 하나 없고, 그분의 스타일과 입맛에 맞춰나갈 일이 막막하다. 그런데 이번에 오신 이 분은 ‘헤쳐 모여'를 하지 않으셨다. 이메일로 본인을 나직하게 소개하셨고, 필요한 사항은 언제든 면담 요청해 달라고 하셨다. 유관 부서의 무리한 요청에는 검토해서 결정하자며, 업무는 어떻게 정리할지 부서 비용은 어떻게 쓸지 궁금한 것들은 콕 집어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셨다. 내 마음속에 왔다 가신 건지 사이다 백 개를 들이부어 주셨다.


면담하면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운영을 하실지 알려 주셨고, 개선 의견은 귀담아 들어주셨다. 취조받듯이 몰아가며 면담하던 그런 팀장님이 아니셨다. 문제점부터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하던 팀장들과 달리 이미 잘하고 있다며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내 일과 자신이 부정당할 때마다 힘들었는데 이런 인정과 배려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을 본인이 먼저 말씀해 주시니 그저 '맞아요', '그럼요', '좋아요' 동조하면 되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TV에 나오는 그런 분이 우리 팀장님이라니 지저스! 천지신명이 날 버리진 않았나 보다. 몇 년 만에 면담하고 웃으면서 후련하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런칭처럼 새로운 업무를 하는 도중에 상사가 바뀌는 건 리스크가 크다. 어떨 땐 최악이다. 업무가 진행된 상태에서 새로 합류한, 권력을 가진 분이 맥락은 모른 채 배 놔라, 감 놔라 하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간다. 단 한 명 때문에 업무를 처음부터 새로 하는 것도 다반사이다. 흐름을 읽고 추이를 보며 조언해 주시면 좋으련만, 무조건 본인에게 맞추라고 하면 난감하다. 이래서 런칭을 해 놓고 조직이 바뀌거나 팀장이 세팅된 다음에 런칭하도록 기도하곤 한다. 이번 타이밍은 맞지 않았지만 업무는 어긋나지 않도록 살펴 주시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다.


'그냥 하지 말라'의 저자 송길영 작가는 타율적 인간을 만들려면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한다. 또, 창의성을 키우려면 규칙을 배제하고 양심과 창의성으로 스스로 관리하는 자율형 인간이 되도록 하라고 한다. 이전의 팀장님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에서 팀원들을 컨트롤하고 싶어 했다. 의견을 내고 싶어도 이미 정해진 규범에 갇혀 어차피 안 될 텐데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량껏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시키는 일 위주로 해야 하니 능률도 떨어지고 일의 재미도 덜했다.


새로운 팀장님은 이미 잘하고 있으나,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해 보자고 한다. 믿고 지켜 봐 주신다는 생각이 들자 뭔가를 더 잘해서 부응하고 싶어 진다. 핵심 업무만 잘하면 부수적인 것들은 재량껏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의욕도 더 생겨났다.




일이 많고 어렵고 힘든 건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하지만 사람이, 특히 직속 상사와 관계가 불편하고 소통이 되지 않으면 회사가 지옥이다. 종일 9 시간을 매일 같이 괴롭게 보내며 업무도 수긍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다행히 새 팀장님이 오신 뒤 사무실 공기가 산뜻해졌다. 일은 버거워도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신임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고래를 춤추게 하는 그 이상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팀장님,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오래오래 함께 해 주세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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