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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22. 2023

한 달마다 이사를 합니다




시간은 참 잘도 흐른다.


재활과로 전과한지 벌써 한 달이 코앞이다. 거의 모든 상급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는 입원 기간이 한 달이다. (우리가 가본 중에 유일하게 신촌에 있는 ‘ㅅ’ 병원의 재활병원은 교수님들마다 입원 기간의 차이가 있다.) 입원과 동시에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게 보호자가 해야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입원 후 2주가 지나자 이틀에 한 번꼴로 다음 병원 알아봤냐는 전공의 선생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게 됐는데 처음에는 이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는 병원에서 잠을 너무너무너무 못 잔 관계로 전원을 위해 정보의 바다를 헤엄칠 정신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서류 준비와 서류에 존재하지 않는 환자 상태를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 외에는 언니가 전원 준비(외래 예약-> 담당 교수님 대리 진료-> 입원장 발부)까지 맡아서 해줬다. 이런 순간에는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에 작은 위로와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경험을 통해 배운 것들을 공유하자면,


 1. 여러 병원에 대리 진료를 가야 하는 경우 서류를 각 병원마다 준비하지 말고 입력한 후 돌려달고 말하면 대부분 다시 돌려주신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 보면 서류 양도 많고 발급 비용도 늘어나는데 굳이 돈을 많이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2. 입원장은 받지만 사실상 거기에 정확한 날짜를 대리 진료 당일에 써주는 곳은 거의 없다. 그 언저리 어느 정도에 입원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하고 병상이 나오는 대로 보호자에게 연락을 준다고 한다. 좋은 병원은 대기가 길기 때문에 자리가 생겼다고 하면 얼른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2021~2022년 상급 대학병원 기준)


3. 전원 할 병원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쯤 담당 전공의 선생님에게 날짜를 전달을 하고 대략 이틀 동안 퇴원 준비를 한다. 버릴 짐이 있으면 버리고 안 쓰는 짐들은 타포린백에 차곡차곡 정리해 병상 아래에 두거나 창가 쪽이라면 가방에 넣어 창틀 쪽에 올려둔다. 쓰면서 정리할 짐들은 최대한 마직막에 정리하면 중간에 계속 짐을 뒤적거릴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퇴원 예고제가 있는 병원은 퇴원 전날까지만 재활을 받고 당일에는 재활 없이 회진 후 병원비 수납을 하고 퇴원약을 1주일치(전원 가는 병원에서 3일 치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음)를 받고 11시에서 12시 사이에 퇴원을 한다. 다음 병원의 입원시간이 늦다면 점심까지 먹고 퇴원해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빠는 콧줄 식사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멀미라도 하면 토할까 봐 아침을 최대한 늦게 천천히 드리고 점심은 건너뛰었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는 그냥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아빠는 전혀 거동이 안 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설 응급차나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차를 섭외해야 했다. 발병 후 6개월이 지나면 장애인 등록 절차를 밟고 심사 후 장애인 복지카드가 나오면 장애인 콜택시를 신청해서 타고 갈 수 있지만 그 시기에 아빠는 3개월 차였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중에 정말 다행히도 주말에 일하는 곳에 아버님 차가 전동 휠체어를 2대가량 태울 수 있는 승합차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빠가 아프게 된 후로 참 많은 양해를 받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의 차가 필요하면 흔쾌히 도와줄 수 있다고 해주셔서 속 썩일 일 없이 이동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했다. (이후로 3번가량 더 병원을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선약이 있으셔도 뒤로 미루시고 꼭 오셨다. 정말 감사했다!!)




퇴원 날 짐은 대형마트 계산대 앞에서 살 수 있는 큰 타포린백(60*25*35 사이즈) 3개 분량 정도 나왔다. 담요나 쿠션은 부피가 커서 압축팩에 꽉꽉 눌러서 압축해서 담았다.( 안 그랬으면 쿠션만 한 짐이었다.) 짐을 먼저 차에 싣고 드디어 3개월 만에 아빠에게 환자복이 아닌 본인 옷을 입혀드렸다. 묘한 기분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가긴 하지만 일상복을 입었다는 게 그래도 조금 나았다는 신호 같았다.


어리둥절하게 차에 탄 아빠는 흑석동으로 가는 동안 자지도 않고 창밖을 열심히 구경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본인이 아는 길 같으면 더 자세하게 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집에 간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병원 로비에 도착한 아빠는 다시 병원으로 왔다는 사실에 이글이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엄마와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또 다시 적응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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