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부리부리하게 노려본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우리가 아니다. 중대하게 아픈 일이 아니라면 할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우린 지체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디스 이즈 스파르타!)
이사한 흑석동 대학병원은 첫날부터 다인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6인실을 원했는데 비어있는 자리가 없어서 신관 1인실로 배정을 받았다. 전원을 할 시기에 때마침 불러준 곳이라서 1인실이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가야 했다.(기억하기로는 병실비가 1박에 백만 원가량이었던 것 같다. 진짜 무슨 성수기 제주도 5성급 호텔보다 비싼… 물론, 의료진이 불철주야 봐주시기에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당황스럽긴 했다.)
5층에 입원한 우리는 2박 3일 동안 꽤나 극진한(?)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이송 요원분이 제때 못 오시면 간호사 선생님들 세 분이 순식간에 나타나셔서 휠체어에 태워주셨고, 환자복도 다 갈아입혀주시고, 뇌파검사 후 머리에 덕지덕지 붙은 풀 같은 것도 아주 노련하게 잘 닦아주셨다.
일반인이 보기에 그게 무슨 질 좋은 의료 서비스라고 할 수 있으나 보호자로서는 병원에서 자질구레하게 힘쓰고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그걸 80% 이상 해결해 주시니 세상 편했다. 아! 잠자리도 전쟁터 같은 다인실보다 훨씬 편했다. 이틀 밤을 보호자 간이침대가 아닌, 무려 소파에서 잤다! 나중에 본관 10층 다인실로 옮기고 하루 이틀 생활해 보니 2박 3일 동안 1인실 경험은 참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
입원한 당일에는 입실이 늦어서 오후에 CT만 찍었고, 다음날 교수님 회진 후 뇌파검사며 이것저것 받으러 다녔다. 그래도 그전 병원에서 두세 달 동안 아빠와 이리저리 치료며 검사며 수도 없이 다녔더니 이곳에서 적응은 나름 빨랐다. 근데 적응이 참 안 되던 한 가지가 있었다. 아빠의 경관식! 저번 병원은 신경외과와 재활과 까지 팩 포장 경관식+연결관이 세트로 끼니때마다 왔는데 여긴 두세 캔씩 유동식만 오고 지하 의료기 상사에서 아래와 같은 피딩 세트를 개별로 사야 했다.
피딩통+피딩줄 세트 (사진 출처-네이버 쇼핑)
근데 간호사 선생님이 이걸 씻어서 쓰라고 하셨다. 심지어 이걸 사면 보통 1주일씩 쓰고 버린다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살균 팩 포장된 경관식을 드시고도 묽은 변 파티인데 얘를 소독 없이 며칠씩 쓰라고? 깨끗하게 관리될 리가 없는데…?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그건 어떻게 하려고?’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 떠다녔다. 당장 식사는 해야 하니 본관 의료기 상사에 가서 저 사진과 좀 다른 올인원 모양의 피딩 백을 사 왔다.(가격은 그 당시 기준 8,000원 정도 했다. 사진과 같은 세트는 만 원이 넘었던 것 같다.) 피딩 백을 사서 식사를 챙기면서도 이건 진짜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병원 안에서 다 깨끗하게 유지될 수는 없지만 식사만큼은 최대한 청결해야 한다는 게 우리 가족의 입장이었다.
사 온 피딩 백으로는 본관으로 가는 날까지 최대한 깨끗하게 쓰기로 나 자신과 합의를 보고(진짜 피딩 백 안에 잔여물 안 남게 하려고 얼마나 씻고 말렸는지 모른다.) 아빠가 잠든 후 인터넷으로 피딩 백 검색을 시작했다. 온갖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 의료기 상사에서 본 모양새와 유사한 것들을 찾았다.
위의 사진과 같은 플라스틱 피딩 백은 내용물이 없을 경우 서로 달라붙는 실리콘 피딩 백보다 씻고 말리는 게 용이해 보였다. 가격은 3,000원 정도. 피딩줄은 도저히 깨끗하게 씻어서 쓸 수 없을 것 같아 하루 3개씩 쓸 생각을 하고 검색을 해보니 개당 400원 정도 했다. 우선 2주 정도만 써보려고 통은 3일에 한 번 교체 기준으로 5개, 피딩줄은 45개가량 샀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니 훨씬 경제적이었다. 집에서 누가 챙겨다 줄 사람만 있다면 굳이 비싸게 사서 위생적이지 못하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