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이사의 달인

흑석동 병원에서는 갑자기 전원이 정해지는 바람에 한 달의 입원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첫 병원에서 전원을 알아볼 당시 언니가 이곳과 신촌에 있는 병원을 거의 동시에 알아봤는데 시기가 맞는 병원으로 먼저 오느라 신촌 병원에 대기를 걸어뒀었다. 신촌 대학병원은 그때만 해도 입원 대기 환자가 많았고, 급성기 환자 (수술 후 6개월이 안된 환자)를 우선으로 받아준다고 해서 불러주면 언제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병원 생활을 하면서 재활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그 병원은 꼭! 가야 한다고 다들 입 모아 이야기했기에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입원장만 나온다면 안 옮길 이유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재활을 시작하기 전에 주치의 선생님께 전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금 죄송했지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병원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이른 전원에 교수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지금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건 사치였다. 그 와중에도 실속은 챙기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재입원도 가능한지 여쭤봤는데 흔쾌히 가능하다고 해주셔서 신촌 이후 전원 할 병원에 대해서는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또 짐을 챙긴다. 2주도 안되었는데 짐을 담았다 풀었다 피난민이 따로 없다. 가져갈 서류도 조금 늘었고 짐도 그 사이 늘어서 더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항상 짐을 챙길 때마다 생각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있지만) 없으니 스스로 강박적이더라도 빠지는 짐 없이 잘 구분해서 담아야 한다고. 누가 들으면 겨우 짐 싸는 일에 그렇게 비장(?) 할 필요 있냐고 할 수 있지만 그 행동들이 내 정신을 꽉 붙잡게 해 줬고, 너무 힘들어서 내 몸이 가루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을 때 각성하게 해 줬다. 그 간단한 일이 체계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면 허둥지둥+어영부영으로 살아온 내가 쉽사리 무너질게 뻔했다. 나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데.

퇴원 전날 병원 바로 바깥마당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입원을 하고 보호자로 상주하려면 절대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 그게 그 시절 가장 기본이자 필수 조건이었다.) 아빠는 병실에서 받지만 보호자인 나는 4~8만 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유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건 병원을 옮길 때마다 하는 일이었다. 동네에 가면 무료로 받을 걸 돈을 내고 받아야 하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주말에 일 끝나고 엄마와 교대하러 들어갈 때는 그 전전날 동네 선별 진료소에 가서 무료로 검사를 받고 음성 문자를 가지고 들어갔다. 정말 매주 코를 헌납하다 보니 짜증도 귀찮음도 다 사라져 버리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경지에 이르렀다.)

입원 기간 동안 세상 친절했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퇴원 약과 처방전, 전원 소견서를 챙겨 신촌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일하는 곳 아버님의 리프트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매번 우리의 스케줄에 맞춰 인천에서 오고 가는 게 힘드셨을 텐데 이 은혜를 언제 다 갚나 싶다.) 신촌 병원 근처는 꽤나 복잡한 곳이라 한껏 긴장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만 무사히 했을 뿐 우린 병원 로비에서 대기만 3시간을 넘게 했다. 처음에는 3시쯤 입원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가 들어갈 방의 퇴원이 늦어져 5시가 다 된 시간에 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빠도 나도, 같이 기다려주던 엄마도 진이 홀딱 빠졌다. 원무과에서 수속을 밟고 입원 측에 올라가서도 바로 병실로 못 들어가고 아빠는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한번 받았고, 음성 결과가 나오자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긴 대기 시간으로 첫인상은 좀 별로였지만 병실에 들어가 짐을 풀고 간호사선생님 설명을 듣는데 6주간의 입원 기간 동안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날이 추워서 겹겹이 입혀야 한다는 엄마 말에 패션 테러 급으로 입힌 일상복. 이때부터 다리 꼬는 습관이 다시 스멀스멀~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힘들고 지쳐서 점점 휠체어에서 흘러내리는 중. 아무리 다시 앉혀도 저 상태로 원상복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