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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겔다 Feb 29. 2024

2. 사랑받고 싶은 게 죄는 아니잖아

1남 4녀.     

딸부잣집 둘째.     

가부장적인 아빠와 수동적이고 늘 삶이 고된 엄마. 

              

결혼 전 난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만나는 범주의 사람들과 주변 친구들을 둘러봤을 때      

난 나름 중산층 가정에 대학원 공부까지 마치고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었다.      

아니 내 기준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난 참 많이 부족하게 살았었다.     

사랑과 관심과 애정이 많이 부족했었나 보다.         

       

아빠는 가족보다 주변의 시선을 더 신경 쓰는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예의범절을 강요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왔지만 자식들에게 크게 관심은 없었다.   

자식들 생일이 언제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다.      

대를 이을 아들 보려고 딸을 넷이나 낳았고, 그런 딸들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정 어리게 대하지도 않았다. 딱 보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힘들어 보였다.      

성격이 강한 아빠를 만나 늘 주눅이 들어 있었고,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줄줄이 태어난 딸들까지.    

언제나 불만이 많고, 언제나 아빠와 싸웠다.      

엄마의 고된 삶은 엄마 자신을 추스리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딸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따스한 배려도 엄마는 우리에게 베풀지 않았다.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딸을 대하는 보통의 아빠들의 모습을 인터넷 글이나 다른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들으면서 난 유년시절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첫 생리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난 충격을 받았었다. 부모님께 축하를 받고, 엄마가 준비해 준 생리대, 사용방법, 주의사항, 생리통에 대한 대비책. 그 어느 하나도 난 엄마에게 듣지 못했다.      

나 자신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해결했었다.      


나름 부족하지 않은 유년시절이라 생각했었는데 사랑과 관심, 애정이 크게 부족했었던 것 같다.                

그러서인지 나에서 조금이라도 배려해 주고 잘해주는 사람을 보면 과하게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도움도 크게 감동하고, 작은 나눔도 크게 고마워하며 하나를 받으면 둘은 줘야 밸런스가 맞다고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호의에 항상 보답을 해야 하고 내가 베푸는 호의는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그게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남편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특히 나한테.     

비 오는 날 하나의 우산을 둘이서 나눠 쓰면 남편의 한쪽 어깨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젖어 있었지만 내 옷은 멀쩡했다.       

어디로 데리러 와달라 하면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와주었고     

내가 굼뜬 행동을 하거나 기다리게 해도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거나 기다리게 만들면 버럭 화를 내고 짜증을 내던 아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남자였다.      

그런 면이 정말 끌렸던 것 같다.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건지 그 사람의 사랑이 식은 건지 내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하며 느끼며 살고 싶다.      

작은 배려, 작은 관심, 작은 애정도 나는 느낄 수 있는데      

이젠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이혼하자고 한 이유가 술을 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굳이 핑계를 대자면 유년시절 결핍 때문에 사랑받고 싶고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데      

남편에게선 더 이상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는다는 건 내가 그 사람에게 특별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사람에게 난 더 이상 특별하지가 않다.     

난 그 사람의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데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결심한 이혼이다.      


사랑받고 싶은 게 죄는 아니잖아?      

사랑을 기대하고 있지만 늘 공허한 실망감뿐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끝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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