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비밀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때로는 버겁고 부담스럽다. 커져버린 비밀의 스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고민과 비밀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갈 때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맥주 한 잔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과한 참견과 과음이 된다 하더라도. 잔혹하고 냉엄한 사회의 평가 속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서늘해진 마음을 달래고 녹여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니 관계는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내 인생 최상의 아름다운 관계로 남을 것 같았던 남편과의 관계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히 내 그늘 아래에서 나와 함께 미소 지을 것 같았던 자식도 결국은 넓은 세상으로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40대 중반을 살아가는 나에게 ‘좋은 관계’란 내 욕망과 상대의 욕심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한다. 좀 더 욕심낼 수 있지만, 어느 정도에서 멈춰 선다. 좀 더 기대할 수 있지만 상대의 마음 알고 있기에 한발 물러선다. 욕심과 욕망의 다른 말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성숙하게 물러설 수 있는 멈춤'이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