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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Apr 15. 2024

강동원이 아니어서 그랬을까요

우산을 놓고 온 날이면 꼭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아줌마가 주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비가 오면 강동원과 함께 우산 쓰는 상상을 잠깐 해본다.


 대학원시절 학교에 가려면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그날따라 늦잠을 자 급히 집에서 나왔고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내리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산을 깜박했던 나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검은 하늘에 대고 '제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만 울지 말고 참아달라'라고 빌었다.


 무심하게도 버스를 타자마자 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난 학교 앞에 우산 없이 버스에서 내렸고, 덩그러니 서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마음 같아선 같이 내린 학생에게 우산 좀 같이 쓰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소심한 나의 입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한층 더 어두워지며 비가 멈췄다. 옆을 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내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고 서있다.

 "이 학교 학생이시면 같이 갈래요? 제 우산이 좀 크거든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학교로 향하는데 이 남자 키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바람 때문인지 자꾸 우산이 내 머리를 치고, 우산살 사이에 머리카락이 낀다. 잠깐이지만 '차라리 내가 들까..'하는 생각이 스쳤고, '우산만 크면 어쩌나 키도 조금 더 컸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입술이 달싹달싹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그 5분 남짓한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던지, 왜 그리 땅만 보이던지. 영원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제게 우산 한 켠을 나누어 주셨던 남자분, 감사합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사라졌지만 그때 도움 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저 때문에 비 많이 맞으셨을 텐데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인스타그램 @nousand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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