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필패의 역사
아주 가까운 곳에 해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한 곳에서 답을 찾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성과의 인연에 있어서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첫사랑과도 그랬고 삼성 다니는 아가씨와도 그랬고 홍대에서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와도 그랬다. 게임 덕후에게 뺏겼다고 착각했던 그녀도 그랬었다. 내가 조금만 달리 생각했다면 여태껏 혼자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앞선 이야기는 그나마 내가 선택을 할 여지는 있었다. 생각만 달리 먹었다면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하는 이야기는 아예 나는 전혀 모른 채로 지나가 버린 인연이다. 알아차리지도 못했는데 무슨 인연이냐고? 그냥 흘러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인연이라서 그렇다.
발단은 이랬다. 한때 자주 놀러 가던 친구가 있었다. 일찍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었는데 워낙에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집에도 자주 놀러 갔었다. 친구 와이프도 성격이 너글너글하고 좋아서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함께 보는 것을 선호했다. 부부와 나 이렇게 3명이서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짝을 맺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 와이프 주변 지인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소개팅 자리를 가졌는데 아쉽게도 잘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친구네 집에서 만두도 만들고 같이 소풍도 가면서 와이프의 지인과 친해지는 전략을 택했다. 얼핏 잘 맞아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아쉬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문제는 친구에게 있었다. 지나치게 나에게 간섭을 한 것이다. 소개해주는 것은 좋은데 상대방의 연락처도 받지 못하게 했다. 명함도 받지 못하게 했다. 내가 따로 연락을 하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소개를 해주면 뭘 하나? 내가 단독으로 연락을 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친구는 내가 여자들하고 잘 안 되는 것이 내 문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자기가 계획을 짜서 잘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녀 사이는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든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데 늘 그 친구 부부와 함께 보니 더 이상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뭐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연이 아니겠거니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자꾸만 내게 간섭하는 친구가 짜증이 나서 조금씩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친구 와이프가 자신의 친구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만났으면 잘 됐을 거 같은데라고 하는 것이다. 정작 난 그 친구를 소개받지 못했었다. 친구 와이프의 동네친구였다. 우리 모임에도 가끔 얼굴을 비쳤었다. 꽃집을 운영하는 아가씨로 동글 공글 귀여운 인상에 성격이 좋은 아가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마 그녀가 내게 호감을 품고 있었을지는 몰랐었다.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줬으니까! 왜 연락을 안 했어요?라고 물어보니 원흉은 역시 내 친구였다. 꽃집 아가씨가 호감을 보이면서 나를 소개해 달라고 해도 그 친구가 막아섰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사전에 차단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나 분했는지 모른다. 결국에는 나는 이성을 내 의지대로 만난 게 아니고 그 친구의 계획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나나 그 친구나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소개팅을 하러 나와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친구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이건 소개해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해 버린 셈이다.
나이를 먹고 내가 그 친구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 친구와의 사이도 멀어지고 말았다. 그 친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이것도 가스라이팅의 일종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꽃집 아가씨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났다면 이후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예 시도도 못해보고 끝나버렸으니 말이다.